영화 ‘헤어드레서’
카티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꿈에 부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사람들을 아름답게 변신시키는 헤어드레서라는 일에 누구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헤어드레서는 아름다움을 다루지만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네요”라는 말과 함께 퇴짜를 맞고 만다.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난 카티는 자신만의 미용실을 열기로 결심하고 창업자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엄마를 무시하는 딸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으로 이동식 미용실 영업을 하다 경찰서에 끌려가고 베트남 이민자들의 밀입국을 돕는 위험한 일에까지 손을 대는 카티. 그는 과연 자신만의 미용실을 차리겠다는 꿈을 무사히 실현시킬 수 있을까.
‘파니 핑크’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등으로 유명한 독일의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의 신작 ‘헤어드레서’는 뚱뚱한 외모 때문에 부당한 취급을 받는 헤어드레서의 인생 역전기를 담았다. 그러나 외모에 콤플렉스를 지닌 주인공을 내세우는 다른 영화들처럼 외모를 바꿔 새 인생을 맞는다거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짝을 만나 행복을 찾는다는 신데렐라 스토리식의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다.
대신에 영화에 가득한 것은 긍정적인 웃음이다. “아름답지 않다”는 미용실 사장의 말에 “내가 미스 유니버스가 아닌 건 알아요. 하지만 일은 잘해요. 당장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요”라며 자신 있게 맞받아친다. 카메라는 카티의 나신을 끊임없이 비추지만 신기하게도 연민이나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면 혼자서 지퍼를 내릴 수 없으니 지하철에서 만난 옆자리 사람에게 미리 지퍼를 내려달라고 청하는 대담함 등 그의 행동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긍정적인 에너지에 동화돼 미소를 띠게 된다.
동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통일 이후 동독이 겪어야 했던 빈곤과 실업, 이민자 문제 등 혼란과 변화를 담아내며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전하고 있다. 창업자금 대출을 위해 찾아간 은행에서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 보증을 서줄 수 있느냐”는 창구 직원의 말에 “남자가 와도 아내 직업을 물어보느냐”고 반문하고 동독 시절 노동자를 위해 지었던 마르찬 자치구의 낡은 고층 아파트와 현대식 백화점의 풍경을 반복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교차 편집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베를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양로원 노인들이나 베트남 불법 이민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카티를 통해 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의 장벽을 조롱한다.
수많은 시련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세상이 내 편에 서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 편에 서겠어’라는 자신감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카티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희망과 용기,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감독 도리스 되리, 출연 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마이데, 15세 이상 관람가,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