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가족연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가족의 형태는 항상 변화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축소되고 있다고 걱정되는 가족의 형태가 ‘핵가족’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한참 핵가족화 경향을 보이던 시기에는 핵가족화 자체가 우려의 대상이었다. 당시에는 3세대 가족(조부모님과 결혼한 부부 그리고 자녀들이 같이 사는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10년 간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등장하며 이제는 핵가족이 가장 일반적인 가족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사회에는 대부분이 핵가족 형태로 살아갈 것이라고 보는 통념이 있지만, 현실의 가족은 그보다 다양하다. 가구통계 상으로 핵가족은 2세대가구에 포함되는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8년 2세대가구(결혼한 부부와 자녀가 같이 사는 가정)는 55.1%로 전체 가구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1985년에 67%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감소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출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혼인율 및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과 이혼율의 증가 현상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혼인과 출산으로 가족을 이루던 기존의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비혼자가 급증하며, 핵가족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출산율은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1.54명에서 1.3명으로 하락했고 이혼율은 같은 기간 동안 50%나 늘었다. 반면 독신 가구수는 95년 대비 2000년에는 35% 증가해 총 가구수에 비교해 3배나 높은 증가세를 보인다. 이와 같은 공식적 통계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 형태가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혈연 위주 가족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가족들의 형태는 기존 혈연 위주에서 벗어나 정서적 친밀감, 경제적 협조체제 등을 기준으로 확장되고 있다. 함께 사는 것이 아니더라도 공동체가족, 한부모 가족, 친구 가족 등 더욱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도 가족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공동체 가족과 같이 비혈연 가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은 사회적인 관심을 받았는데, 성미산 마을 공동체와 같이 여러 가족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기존 사회에서 품고 있던 ‘가족’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1994년 ‘대안 교육’에 뜻을 같이 하는 젊은 부모들이 모여 60평대 주택을 구입해 공동육아를 시작한 것이 성미산 마을 탄생의 배경이다. 이들처럼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공동체를 이룬 가족 뿐 아니라 최근에는 노인,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공동체 가족’도 눈에 띈다. 동성 가족, 동거 가족, 친구 가족과 같이 혼인이 아닌 동거로 집단을 이룬 가족에 대한 시선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선한 목적으로 모인 공동체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독립한 개인이 어울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동거는 ‘사회적 약속’이 아닌 ‘개인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형태이며 성인이 자신의 선택으로 만든 독립적인 가족이다. 가족의 형태와 의미가 변하는 만큼 정책과 사회적 시선 역시 변화가 요구된다. 다양한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사회적 약속 안에서 공동체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제도적 확충이 시급한 것이다. ‘결혼’이라는 신고 과정이 없어도 함께 살며 서로를 보호하고 친밀감을 나눈다면 국가가 가족에게 주는 혜택 및 권리를 그들 역시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주어진 규범을 따르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며 기존 규범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는 개인이 늘어간다. 이에 따라 남녀 구분, 즉 성별이분법 자체도 약화되고, 친밀한 관계에서도 다양한 조합이 만들어진다. 가족이 변화되면서 여러 형태의 가족들이 생겨나는 현실은 핵가족 중심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다양성의 사회는 다양한 개인의 정체성이 생겨나고, 남녀 간의 결합만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관념을 넘어서 다양한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지며, 다양한 삶의 양식이 나타나는 사회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은 결혼과 혈연을 통해 구성되던 과거의 그것에서 한층 발전해,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물리적으로도 가까이 있어 친밀감을 느끼는 관계로 나아갔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입양, 위탁과 같은 사회적 장치로 한 가족을 이루거나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삼고, 동성 또는 이성과 동거를 하며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맺는 이들 역시 이제는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다. 결혼 제도로 묶이지 않고, 혹은 관계에 종속되지 않고 독신으로 살더라도 그로써 충분히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면 그 역시 가족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족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내용이다. 혈연 중심적인 사고에 빠지기보다, 다양한 가족들의 나름의 특성과 문제에 걸맞은 지원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을 돕는 일이다. 이것이 가족의 미래이고 이러한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박혜경(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