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노래 못하는 것 없는 종합 예술인 가족
“3대 마술 대가족 공연 기대해 주세요”

교도소 장기복역수로 사회의 냉대를 겪었지만 이제는 어엿한 3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운곡 황찬길(77)씨 가족. 어려움도 많았지만, 생판 남인 자신을 돕고자 온정을 베풀었던 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프로마술사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는 마술 가족’ 황찬길씨 가족은 전국의 교도소, 양로원 등을 다니며 마술 공연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찬길·이정숙씨 부부, 첫째 휘, 둘째 휘정, 셋째 휘숙, 이정숙씨.
‘우리는 마술 가족’ 황찬길씨 가족은 전국의 교도소, 양로원 등을 다니며 마술 공연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찬길·이정숙씨 부부, 첫째 휘, 둘째 휘정, 셋째 휘숙, 이정숙씨.
경기 안양시에 위치한 부부의 마술극장 작업실. 그동안 교도소, 양로원, 재활원 등을 다니며 노래, 춤, 마술을 접목한 공연을 선사해온 35년간의 세월이 액자 속에 걸려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탈영했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19년간 복역했던 황씨는 교도소 생활로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얻었다. 그의 본업인 화가로서의 능력과 마술, 그리고 아내 이정숙(57)씨다.
위문공연차 교도소를 찾았던 이정숙씨는 교도소 밴드 지휘자를 맡고 있던 20세 연상의 황씨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친정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후 가정을 꾸리고 아들과 두 딸을 품에 안았다. 긴 복역 기간 동안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그는 동양화 화가가 됐고 ‘교도소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덕분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회를 통해 상당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남다른 이력 때문이었다고 황씨는 회고했다. 그동안 옥바라지 해온 황씨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베풀어 준 것처럼 너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며 나누며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고. 어머니의 말씀에 감명을 받은 그는 전국의 교도소,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위문 공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수들을 대동하고 춤과 노래를 들려주는 공연을 했다. 하루는 마술사를 초빙해서 공연을 올렸는데 관객들의 전에 없는 환호를 보고 ‘마술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황찬길씨. 그 길로 해외 유명 마술사들을 찾아다니며 마술을 배웠고 이제는 마술사로 살아온 세월도 30년이 넘어간다. 그는 무대에서 혼자가 아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처음에는 숫기 없던 아이들도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적극적인 성격이 됐다.
한국의 1세대 마술사가 된 아버지를 보며 프로 마술사의 길로 들어선 삼남매 중 첫째 아들 휘(35)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직접 마술을 지도하고 공연도 올릴 수 있는 마술 전용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술작업실과 멀지 않은 곳에 8년 전 6층 규모의 마술극장을 연 것. 무대미술을 전공한 그는 친구들과 직접 손으로 극장을 꾸며 지역주민들도 쉽게 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추진력 강한 마술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막내딸 휘숙(29)씨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마술과 바리스타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둘째 휘정(33)씨는 대학가요제 금상 출신으로 노래실력도 수준급이다. 지금은 과학원리를 마술에 접목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술을 선사하고 있다. 노래, 춤, 그림, 입담 등 못하는 게 없는 종합 예술인 가족이다.
이제 20개월 된 쌍둥이의 엄마인 휘정씨는 얼마 전 시립 양로원 공연 때 처음으로 쌍둥이를 데리고 갔었다. 말도 못 하는 아이들이 공연에 푹 빠져 ‘와’ 하면서 박수치는 모습을 보니 나중에 마술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르쳐 보고 싶다고. “잘하고 못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죠. 아이들도 봉사를 하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경험이니까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대 위에 서는 경험으로 자신감도 생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쌍둥이 엄마 휘정씨는 3대에 걸친 대가족 마술공연을 하고 싶단다. “아직 막내가 결혼을 안 했고, 큰오빠네도 아직 아이가 없지만, 형제끼리 ‘우리 모두 아이가 생기면 함께 모여서 공연단을 만들어 보자’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가족이 한 상에서 밥 한 끼 먹기도 힘든 요즘, 각박하지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의 사랑을 이웃과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마술로 집이나 돈을 만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어 줄 수 있는 행복의 마술사들에게 언제나 행복과 사랑이 넘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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