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는 날

3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소풍의 기억은 꽤나 강렬했습니다. 소풍이라야 어른 걸음으로 탁아소에서 10분  남짓 떨어진 남걀사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이었지만, 만1~3세까지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아이들만 추려도 대략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기 위해서는 같은 숫자의 자원봉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소풍을 가기 며칠 전부터 맥글로드 간지 골목마다 소풍 당일 하루짜리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벽보를 붙이곤 했죠.

어린 아기들을 접해야 하는 탁아소의 특성상 자원봉사자는 2주 이상 일할 수 있는 사람만을 받지만 이날만은 여행자들도 대환영입니다. 자원봉사자 한 명당 아기를 한 명씩 배정받고, 주의사항을 숙지하고, 손을 꼭 잡은 후 사원으로 줄지어 가는 것이죠. 3년 전 그때, 제가 맡았던 아기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새침데기 ‘돌마’였는데, 모처럼의 나들이에 신난 돌마에게 야단을 쳤다가 그 후로는 저를 볼 때마다 혀를 내밀어서 슬펐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탁아소에서는 꽤나 큰 행사였던 이 소풍을 이번에도 간다고 해서 나름 들뜬 마음을 안고 기다렸지요.

그런데 전처럼 탁아소 아이들 모두가 함께 가는 소풍은 이제 없어졌다고 합니다.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일도 그렇고 한꺼번에 모두 같이 가는 소풍이 너무 힘들어서죠. 제가 학교에 다닐 때와 달리 한국도 요즘은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반 단위로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말하자면 그런 식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10명 정도의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맡는 대신 사진 촬영을 담당했는데, 나름 ‘Rogpa Press’라는 명찰도 따로 받아 목에 걸었습니다. 잔뜩 신난 아기들 10명과 자원봉사자에 선생님들을 합치니 20명이 넘습니다. 이 정도 인원이 한꺼번에 줄지어 길을 나서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더군요. 

남걀사원까지 가는 템플로드에는 티베트 사람들이 하는 노점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아기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모두 내 아기, 아니면 옆집, 혹은 친척 아기들이기 때문이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맥글로드 간지에서 록파 탁아소를 모르는 티베트인은 별로 없기 때문에 대번에 우리의 정체를 알아채고 인사를 건네줍니다.

가는 데 30분, 오는 데 30분, 남걀사원의 코라를 돌아 간식 먹고 사진 찍는 데 1시간. 2시간짜리 소풍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번 소풍도 무사히 즐겁게, 그러나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으러 정신없이 쫓아다녀야 했던 초짜 자원봉사자들은 무척 지친 채로 잘 끝났습니다.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면 돌아오는 길목에서 모모를 팔던 엄마를 만난 한 아기가 서럽게 울어대며 엄마에게 가려고 했지만 결국 탁아소로 얌전히 돌아와야 했다는 것 정도. 그렇게 록파 탁아소의 큰 행사이자 작은 일상이 하루 속으로 저물었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 쉬어도 됩니다. 모두 “갈레페(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