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빨갰어요. 땅에는 불이 났고 창문도 다 깨졌어요.”(우신일·연평초1·가명)
“친구들하고 시내의 목욕탕에 갔다가 집에 와보니 마당이랑 나무랑 화분이 다 타 있었어요. (부모님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슬펐어요. 집에 안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걱정됐어요.”(차민희·연평초2·가명)
아이들은 포격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과 공포감을 사건이 두 달 이상 지난 취재 당일까지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증거’라고 말한다.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김현진 미술치료사(아트앤마인드 대표)는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자신의 두려움이나 불안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포격처럼 큰 사건을 겪으면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퇴행적 활동을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일 확률도 높다”며 “한 달 만에 아이들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해소될 순 없겠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속내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고 전했다.
연평도 아이들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한 달간 임시 거주지로 활용되고 있는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 미분양 아파트에서 주 5일 그림이나 동작, 연극놀이 등의 수업을 들었다. (재)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이 주최한 ‘하트 인 아트(Heart in Art)’ 프로그램은 예술활동으로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상태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고, 특히 충격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예방하고 트라우마(외부 충격에 의한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정부가 제공한 임시 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 중 아동 및 청소년은 100여 명이다. 아이들은 포격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찜질방 생활을 했고, 현재는 임시 거주지로 마련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두세 가정씩 함께 거주하고 있는 불편한 상황이다. “섬(연평도)이 좋다”는 조예림(연평초2·가명)양은 “여기는 도시라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다. 학교(임시학교인 인천 운남초)를 가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해서 힘들다”고 말했다.
“어머, 우리 준혁이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구나! 정말 착하다~.”
그림으로 아동의 우울증 정도를 검사하는 DAS(Draw-a-story) 프로그램을 지도하던 박하나 미술치료사가 박준혁(연평초1·가명)군을 칭찬한다. 박 교사는 “처음 강습을 받을 때만 해도 주위가 산만하고 장난기가 많아 자리에 앉히기도 힘든 아이였는데, 지금은 차분히 앉아 장시간의 검사를 받을 정도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위험에 노출됐던 아동 특유의 불안정한 심리를 성이 부서지고, 화산이 폭발해서 공룡이 도망가는 모습 등으로 그림에 투영했던 아이들은 이제 차분한 그림으로 바뀌는 등 분명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상처가 다 아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충격이나 정서, 생활환경의 편차에 따라 충격을 극복한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이현진 미술치료사는 “아이들이 연평도로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불안·우울 등의 증세가 있는 20%가량은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며 “이는 성인, 특히 스트레스에 취약한 노인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심리치료와 관리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