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인 게스트하우스로 출발해 NGO단체로 확대돼
2003년 7월 서울 종로구 청운동 한 주택가의 2층 하얀 돌집이 의미 있는 출발을 했다.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이 150여 평 20억원 상당의 자신의 주택을 모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들의 비영리 게스트 하우스로 무상 임대한 것. 그 이듬해 김도현 목사가 원장으로, 부인 공정애씨가 하우스 매니저로 뿌리의집에 부임해 상주, 7년여의 세월을 거치며 입양인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인권을 회복시켜주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처지의 친생(親生)가족의 복지를 적극 지원해 ‘입양’이란 가족해체를 최대한 예방하자는 사회의식 운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로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입양특례법 개정운동에 있어 진실과화해를위한해외입양인모임(TRACK),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온라인 커뮤니티 ‘미스맘마미아’, 국외입양인연대(ASK) 등 입양인 관련 단체들과 밀접하게 연대하고 있다.
입양인 단체들과 연대해 입양특례법 개정운동 전개
“우리 사회가 입양을 무조건 권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입양 발생 과정에서 가슴 아프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생모와 아이의 인권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한국의 입양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을 것이다.”
‘뿌리의집’은 정부가 입양정책의 관점을 바꿀 것을 촉구한다. “2006년부터 ‘입양의 날’을 기념하는 등 입양 활성화 정책만을 통해 해외입양의 오명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이 대목에서 김 원장은 강을 끼고 있는 어느 마을의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다. 강으로 어린아이들이 계속 떠내려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건져 따뜻하게 키웠지만 그 누구도 강 상류 위쪽 마을로 올라가 왜 아이들이 자꾸만 물에 빠져 떠내려오는지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 아이 키우기 캠페인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물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원장은 ‘뿌리의집’이란 존재가 “입양에 관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합의”를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상황에서 한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입양’ 방안밖에 없느냐”는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꾸준히 제기해오고 있다는 것.
친부모 찾아도 문화 차이로 갈등…중재·상담에 개입
하우스 매니저 공정애씨는 하루 24시간 365일 사생활이 거의 없는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것은 바로 뿌리의집을 매개로 해 변화해가는 입양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치유법이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와서 부딪쳐보고 깨지고 상처도 입고, 때론 망가지기도 하지만 ‘우리 집이 있으니’란 생각은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집을 찾게 되고 희망과 힘을 얻어가는, 회복의 징후를 보게 된다.”
공씨에 따르면, 자신의 핏줄을 찾아 한국에 오는 입양인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나 한국인과 접촉하며 성장해온 사람이 대다수다. 보통 생각하듯이 한국에 온 즉시 친가족을 찾아 헤매는 입양인도 있지만 “한국을 충분히 맛본 후 친가족을 찾을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입양인도 의외로 있다. 그의 기억에 특히 남는 경우는 뿌리의집에 머물렀던 미국 거주 30대 후반의 입양 남성. ‘태어날 때부터 버림 받았다’는 분노로 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과 경찰서를 수시로 들락거렸고, 그때마다 김 원장 부부가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고 데려오곤 했는데, 지난번 귀국했을 땐 직장도 잡고 약간의 기부금까지 모아 뿌리의집을 찾아왔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 입양됐던 20대 남성은 처음엔 ‘한국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다 어느 순간 마음을 열고 어릴 때 먹은 기억이 있는 김치를 ‘걸신들린 듯이’ 먹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국어까지 배우려는 참이다. 미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한 입양인은 처음 뿌리의집에 왔을 당시 어둡고 음울한 그림만 그리다가 머무는 날이 길어질수록 점점 화풍이 밝아졌다. 그는 석 달 후 뿌리의집을 떠나면서 누에고치에서 나비로 변신해가는 연작 시리즈를 선물했다. 자신의 입양 과정부터 현재의 상태까지를 상징적으로 묘사해낸 것.
반면 공씨는 입양인들이 핏줄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와 어려움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한솥밥 먹으며 ‘집’이 돼주는 게 진정한 치유죠”
“해외에선 17, 18세가 되면 완전히 성인으로 인정해 양부모가 아이를 입양했을 당시의 서류를 입양인에게 보여준다. 이 서류를 가지고 한국에 와서 해당 입양기관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서 먼 여정이 시작된다. 친부모들은 ‘아이가 부자나라에 가서 많이 배우고 좋은 대학도 다니니’ 하는 식으로 기대를 많이 하기도 하고, 그동안의 죄책감을 보상하려는 듯이 이것저것 선물 공세를 펴기도 한다. 때로는 ‘내 자식’이란 생각에 간섭도 해보려 하고, (그들은 어색해하는) 신체 접촉을 마구 한다거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울기도 한다. 또 어려운 신세타령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서구문화에 익숙해 있던 입양인들에겐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공씨가 접한 최근의 실례는 아직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재혼한 아버지를 찾아 한국 땅을 밟은 아들에 대해 새엄마가 “어떻게 아버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 양복도 안 입고, 선물도 안 가져왔느냐”고 힐난조로 말했다는 것. 그래서 친부모를 만나고 오히려 사이가 나빠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김 원장 부부는 기꺼이 상담자이자 갈등 해결사로 나선다.
엄마의 몸을 상상할 때면/ 실체 없는 질문들이 떠다니곤 해...(중략)/ 만약 내가 엄마 몸을 만질 수 있다면/ 나는 목을 만지고 싶어/ 공기와 공기가 만나고/ 절망이 빛줄기와 바뀌는/ 엄마가 사랑했을지도 모를 누에 새끼들, 그 새로운 호흡/ 이것이 내가 엄마의 몸을 상상하는 법이야...(중략) 서양으로 간 한국 아이의 진정한 상실, 그를 한국의 모든 나무로부터, 부딪히는 육체들로부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모든 동물들과 천사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가득 찬 실체 없는 이미지들.
(미국으로 입양된 리 헤릭 프레스코 시티 칼리지 영어 교수의 시 ‘몸에 대한 기묘한 질문들’ 중 일부분)
입양인들의 말 못할 고통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가장 근거리에서 이들 내면의 고통을 지켜보는 뿌리의집 관계자들에게도 이 고통은 아직 낯설다.
“입양인의 경우, 영적으로 피폐해진 것을 치유하는 것이 먼저다. 한 입양인이 말한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뿌리가 흔들리니까 늘 구름 위를 걷듯이 발이 땅에 안 닿는 느낌이다. 그래서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의 고통에 눈 감을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