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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의 대가 이춘희(63·사진) 명창이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예술감독직을 다시 맡았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국악원에 몸담았던 그는 ‘제2의 경기민요 부흥기’를 이끌기 위해 다시 개원 60주년을 맞은 국립국악원으로 돌아왔다.

이춘희 예술감독은 중요무형문화제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우리 시대 최고의 명창으로 손꼽힌다. 이은주, 묵계월, 안비취를 잇는 경기민요 제2세대의 선두주자로, 여흥가요적으로 여겨졌던 민요가 점차 예술성악으로서의 위치를 획득하는 과정을 최전선에서 이끌었다.

그는 한국음악 발전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특히 경기소리 및 서도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음악극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초의 경서도 소리극으로 기록된 ‘남촌별곡’(1998)을 비롯해 ‘시집가는 날’ ‘한오백년’ ‘미얄할미뎐’ 등 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이 예술감독은 “명성황후 등 우리 고유의 콘텐츠를 활용한 뮤지컬도 훌륭한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사실상 이들은 서양 뮤지컬에 한복만 입힌 것”이라며 “소리 자체까지 다 우리 국악으로 만든 ‘진짜’ 한국 뮤지컬을 대중화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국립국악원에 새로 들어온 것도 이러한 사명감 때문이다. 민간 교육기관에서 제자들을 길러내고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인 측면이나 보람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위치에 올라 있다.

그러나 그는 “소리극의 부활과 국악의 부흥을 도모하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옛 소리극을 부활시켜 국악원,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국악 브랜드로 만들고, 연연히 내려갈 수 있도록 다듬는 것이 예술감독으로서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경서민요 소리극의 가장 큰 매력 요소를 “대중성 있는 소리”로 꼽는다. “경기민요는 소리 자체가 다른 지역 민요에 비해 밝고 화려한 느낌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콧노래로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 이런 음악적 특성과 잘 맞는 좋은 전통 이야기 콘텐츠가 많다는 것도 소리극의 밝은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그는 서울지방에서 주로 불려온 ‘국문뒤풀이’를 소리극으로 재탄생시켜 보고 싶다고 전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자로 집을 짓고 지긋지긋 살쟀더니(‘국문뒤풀이’ 중에서).” 우리 글로 여러 가지 말을 재미있게 엮어나간 사설 내용에 현대인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편곡한 새로운 곡조를 삽입할 예정이다.

그는 1960년대에 이창배 선생 밑에서 처음으로 국악을 사사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국악을 한다고 하면 ‘어느 술집에서 왔느냐’고 물을 정도로 국악인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인식만큼 처우도 좋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우리 소리에 한평생을 바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안 하면 죽는다는 마음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곧 “누가 하란 건가, 저 좋아서 한 거지”라며 “16세 소녀였던 나는 버스에서 소리를 흥얼거리다가 사람들이 쳐다보면 창피해 부랴부랴 내리고, 노래 곡조를 생각하며 걷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친 적도 여러 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립국악원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소리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다시 한 번 국악의 부흥을 다짐하는 이춘희 예술감독. 그가 우리 국악계에 몰고 올 신명나는 새 바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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