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은 방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TBS 라디오 ‘방은진의 밤으로의 여행’의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3년간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점을 찍는 앨범을 제작하고 싶다”는 방 감독의 말에 영화음악 관계자들이 선뜻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 영화음악 계보의 중추인 조성우씨를 필두로 김준석, 심현정, 김상헌, 박기헌, 원호경, 정세린, 최용락, 김준성, 이희승, 김홍집 등 총 19명의 최정상 영화음악인들의 음악이 수록됐다.
4개의 CD로 구성된 음반에는 한국에서 영화음악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1990년대 이후 영화에 담긴 음악 95곡이 담겨 있다. 이 오리지널스코어들은 모두 영상과 어우러져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감상용으로 듣기에도 손색이 없다.
방 감독은 “‘방은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선곡을 하려 노력했다”며 “라디오 청취자와 음악 사이를 연결하던 중간자적 입장을 해왔던 것처럼, 영화를 청각적인 이야기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방 감독은 영화에서도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편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오로라 공주’(2005)에서는 뮤지션 정재형씨와 함께 작업해 잔혹하고 슬픈 스토리에 맞는 섬세한 음악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조선시대 10대 소녀 과부들의 로맨스를 담은 차기작 ‘이화에 월백하고’(가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감독 이병우씨와 함께할 예정이다. 그는 “영화작업을 할 때 음악이 영화 전면에서 극을 이끄는 것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정재형 감독은 ‘자기 것’, 그러니까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이병우 감독은 ‘화합’을 만든다”며 “이병우 감독의 음악이 사극 장르인 새 영화에 모던한 색감을 입혀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비쳤다.
사실 ‘방은진’이란 이름은 90년대 중반까지는 배우로 더 유명했다. 1989년 민중극단의 연극 ‘처제의 사생활’로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1996)을 시작으로 스크린에서도 활발한 연기활동을 보였다. 그러다 김진한 감독의 영화 ‘장롱’에서 연출부로 활동하면서 “배우보다 스태프가 기질에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영화감독에 도전했다.
배우로, 감독으로, DJ로, 또 이번에는 영화음악의 전도사로 매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그는 “때로 ‘나는 왜 아직도 길 위에 있을까’를 고민한다”면서도 ‘세상을 향해 더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울산 울주군의 온산국가산업단지(온산공단)의 공해병 피해자들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동물·환경 보호와 다문화 가정의 포용 등의 이슈에 대해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매체가 영화”라며 “고속도로를 뚫듯이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보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