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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따라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만으로도

차 안은 후끈후끈한데 난방기까지 가세하는 덕분에 두터운 코트 속

의 내 몸은 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은 러시 아워만 피하면 가장 이상적인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회의나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들 입에서 “죄송합니

다. 차가 막혀서...”라는 변명이 나올 때마다 겉으로는 “요즘 교통

체증이 너무 심하죠?”라며 너그러운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막

힐 걸 알면서 좀 일찍 출발하면 어디가 덧나냐?”라고 욕하는 사람

들 심리를 너무나 잘 알길래 나는 “지하철을 타면 절대로 안늦어

요”라고 굉장한 정보라도 되는 듯 지하철 타기를 권하곤 한다.

물론 지하철의 장점이 정확한 시간에만 있는 건 아니다. 러시 아워

가 아닌 한 지하철처럼 독서에 안성마춤인 공간도 흔하지 않다. 전

업주부였던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의

왕복 90분 동안을 정말 알토란처럼 썼었다. 집안 일 때문에 산지사

방으로 분산되었던 신경을 지하철 안에서만은 하나로 모아 책읽기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만 해도 30대 후반, 40대 초의 한

창 때였기에 아무리 오래 서 있어도 다리나 허리가 아프지 않았었

다.

또 지하철은 시내 버스처럼 난폭운전을 하지 않으니 노인들에게도

쾌적한 교통수단일 터인데 정작 지하철을 타보면 노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단 때문이다. 대부분 다리에 힘이 없

는 노인들에게 지하철역의 계단은 공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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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일단 지하철을 탄 노인들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여

겨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인들을 서서 가게 할

수는 없다. 요즘 젊은이들의 막돼먹음을 탓하면서 노약자석을 따로

만들 필요도 없이 전좌석은 일차적으로 노약자석이어야 한다.

다행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난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을 못 본

척할 만큼 막돼먹지 않았음을 늘 확인하곤 한다. 기꺼이건 억지로건

노인이 앞에 오면 거의 다 자리를 양보한다. 오히려 민망한 건 자리

를 양보받는 노인들의 태도이다. 고맙다는 한 마디가 그리도 어려운

말인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내가 공연

히 미안해진다. 그리고 조만간 내가 자리를 양보받는 그 날이 오면

정말 근사하게 고마움을 표하리라고 결심한다.

그런데 그 날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차내 공기가 너무 혼탁한 탓이

었는지 난 잠깐 졸았다가 깨어났다. 한 아주머니와 할머니(사실

‘할머니’라는 말도 얼마나 주관적인 호칭인가. 예를 들면 내가 15

년째 단골로 가는 우리동네 떡장사 ‘아주머니’를 내 남편은 꼭

‘떡장사 할머니’라고 불러서 번번이 나하고 충돌한다. 그 아주머

니를 할머니라고 부르려면 당신 아내도 할머니라고 해야 한다고. 남

편에게는 아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그 아주머니가 내게는 기껏해

야 네댓 살 연상의 내 또래로 보인다)가 내 옆에 앉아서 졸고 있는

남학생들을 싸잡아 욕하고 있었다.

“할머니, 이렇게 서계시지 말고 저 녀석들한테 일어나라고 하세

요”라고 부추기는 이는 3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러자 50대 후

반이나 60대 초반일 성싶은 두번째 여성이 화를 못삭이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저 싸가지 없는 놈들이 일어날 것 같아. 저 자는 척하는 꼬락

서니 좀 보라구. 요즘 것들이 어디 어른을 알아 봐야지.”

내가 보기에 옆의 남학생들은 조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

고 있었다. 격렬한 운동을 한 후였는지 땀냄새가 진동했고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설사 잠이 깼다 하더라도 그렇게 욕을 먹은 마당에

선뜻 일어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남학생들을 욕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

졌다. 내가 십년만 젊었으면 벌떡 일어나 저 여성의 입을 막아 줄

수 있을 텐데. 전동차가 멈추자 난 큰 일 날 뻔했다는 표정을 지으

며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섰다. 목적지가 한참 남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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