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산하기관 ‘첫’ 여성 임원…‘워커홀릭’으로 26년 일해와
황춘자(57·사진) 서울메트로 경영혁신본부장이 지난 2월 취임한 첫날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실제 서울메트로 경영혁신본부장 집무실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직원들은 언제든지 들어와 황 본부장과 면담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서로 마음을 열면 직원들과의 거리감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소통을 중시한다지만 여군 장교 출신으로 서울시 산하기관 최초의 여성 임원 자리까지 올랐으니 얼마나 ‘칼날’ 같을까 자못 긴장한 채 그를 만났다. 그러나 활짝 열린 황 본부장의 집무실에 들어선 순간 그런 선입견은 일거에 깨졌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미소 띤 눈빛은 따뜻했다. 반면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부드러운 겉모습 뒤 빈틈없는 업무 모습도 엿보였다.
1983년 여군 장교(대위)로 전역한 뒤 1984년 서울메트로에 입사한 그는 가는 곳마다 조직의 변화와 성과를 이뤄내 주목받았다. 2004년 영업소 평가 하위권이던 삼각지 영업소장을 맡아 전체 2위에 올려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난방시설 하나 없던 화장실에 쓰지 않는 라디에이터를 재활용해 설치하고 아이에게 수유하려는 고객을 직접 자신의 방으로 이끌어 따뜻한 물을 끓여 주었다는 일화 등은 현재 서울메트로 고객 서비스 정신의 시작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 산하기관 최초 여성 임원이다. 26년간 일하면서 여성으로서 힘든 일도 많고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한 남모를 노력도 많았을 것 같다.
“그간 교무부장, 계약팀장, 급여복지팀장, 삼각지영업소장, 홍보실장 등 사무실부터 현장 업무까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성은 나 혼자더라. 지하철은 토목, 건축, 통신 등 기술직이 많아 여성은 보조역할만 할 뿐이었다. 남성 세계에서 정책 결정이나 업무 지침을 만들 때 습관적으로 여자에 대한 배려가 없던 시기였다. 나도 8명 중 2등이라는 성적으로 4급이 됐지만 발령은 맨 나중에 받을 만큼 남녀 불평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불평등을 느끼면서도 이겨내야 한다는 집념이 더 강했다. 남자들이 100% 하면 나는 200%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휴일에도 일해 주위에서는 ‘워커홀릭’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상당할 것이다.
“5급으로 입사해 올해 1급을 달기까지 항상 내 이름 뒤에는 ‘여성 최초’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참 슬픈 일이다. 당시 4%였던 서울메트로 여직원 비율은 현재 5%대로 올라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내가 후배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2005년부터 공기업 및 민간기업 여성 관리자 모임인 전국여성관리자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
-8년 동안 여군 장교로 복무하셨는데 이를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지.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많았다. 공부 욕심에 해외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당시 여군 하사관에게 해외유학 특전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도전했다. 여군하사관 후보생 17기로 들어가 시험을 거쳐 현역에서 장교로 임용되고 8년간 군 생활을 했다. 해외무관선발시험에 합격해 해외로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우연히 방문한 서울메트로에 대한 인상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당시 2~4호선을 새롭게 건설하는 서울메트로에는 새 인력이 필요했다. 또 다른 도전에 목말라 있던 내게 서울메트로에서의 이직 권유는 단비 같은 기회였다.”
-군인과 회사원은 언뜻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는데.
“크게 다르지 않다. 군이나 서울메트로는 모두 공조직이다. 사안이 복잡하고 판단이 어려울 때는 군에서 배웠던 공적인 마인드가 상당한 도움이 됐다. 또 군에서 부하들을 사랑하고 공공의 목적과 이익, 대의명분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을 사회생활에 그대로 적용해 시민을 위한 일 속에서 직원들과 함께 공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나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경영혁신본부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서울메트로의 36년 역사는 100년이 넘는 선진국 지하철 역사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연간 수송 규모 세계 3위를 기록하고 ‘고객감동경영대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어느 나라의 지하철과 비교해도 우수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대중교통 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도시의 경쟁력과 시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지표인 만큼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나은 변화를 준비하겠다.”
-은퇴 후 꿈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현재 연세대 정치행정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열심히 도전해보고 싶다. 퇴직 후에도 건강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다. 평소 일 때문에 소홀했던 남편과 딸을 위한 시간도 충분히 가지려고 한다. 조만간 가족이 함께 지리산 등반을 할 계획이다. 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글도 쓰고 싶다.”
황춘자 본부장이 말하는 ‘조직 성공의 6계명’
1. 먼저 다가서라
본사 업무만 보던 내가 처음으로 현장소장으로 발령받았을 때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커피와 차를 준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매표소 직원들에게 직접 가져다줬다.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3개월 넘게 매일 차를 들고 오는 내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라.
2. 채근하기보단 직접 보여주라
나는 부정승차 단속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정복을 차려입고 직접 고객들을 안내했다. 이를 본 직원들이 하나둘씩 따라 나오기 시작하며 하위권에 머물던 부정승차 단속 성적도 전체 116개 역 중 1등을 차지하게 됐다. 내가 먼저 나서니 채근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따라와 준 것이다.
3. 새내기는 조직을 공부하라
여성들의 조직에서 생존 기준은 30세 이전과 30세 이후로 구분된다. 특히 30세 이하 여성은 남녀 불평등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다. 능력도 열정도 대단한 이들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바로 조직에 대한 이해다. 군대나 학교에서 조직문화를 이미 경험해본 또래의 남성보다 조직에 대한 트레이닝이 부족하다. 리더십 과정 같은 조직에 대한 공부를 권한다.
4. 일·가정 양립 위한 자신만의 혜안을 쌓으라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이겨내길 바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조직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포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고 서로 관계를 맺으면 안 될 것이 없다.
5. 가사도우미 비용을 꼭 필요한 학자금으로 여기라
일에서 성공하려면 가정이 편안해야 한다. 능력이 된다면 가사도우미를 쓰는 것도 방법이다. 커리어를 쌓기 위해 돈을 내고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가사도우미 비용도 자신의 성공을 위한 학자금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6. 자리에 맞는 역량을 갖추라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특히 리더는 조직 전체를 볼 줄 알고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하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황춘자 경영혁신본부장은
▲1953년생 ▲1983년 여군장교 전역(대위) ▲1984년 서울메트로 입사 ▲1985~2004년 서울메트로 교육원 교무부장, 계약팀장, 급여복지팀장, 삼각지 영업소장 역임 ▲2005~2010년 서울메트로 홍보실장 역임 ▲2005년~현재 노동부 AA정책 관련 전국여성관리자네트워크 대표 ▲2010년 3월 현재 서울메트로 경영혁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