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맘’ 신화 속에 지쳐가다
‘슈퍼맘’ 신화 속에 지쳐가다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04.30 11:22
  • 수정 2010-04-30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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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커리큘럼 짜고 성적·인맥 관리에 취직까지 개입
미래 불안감 때문 ‘매니저맘 강박증’ 점점 심해져

 

#부부 교사인 김세연(47·가명·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지난해 3월 근무하던 학교에 휴직원을 냈다. 고2 외아들의 입시 준비에 ‘올인’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수리영역 개인 과외를 포함해 언어·외국어·과학탐구 사교육비가 한 달에 400만원가량 든다”며 “서로 얘길 안 해서 그렇지, 대치동에선 아무리 못해도 고1, 2는 300만원, 고3은 400만원씩 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래도 재수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구직 2년차’인 최진희(27·가명·경기 안양시)씨는 엄마가 준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지출한다. 최씨는 워킹맘인 엄마가 써준 자기소개서로 요즘 병원 코디네이터 일자리를 찾고 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엄마와 함께 ‘취업 총력전’을 펼친다. 병원 홈페이지를 함께 보고 면접 질문을 뽑은 뒤 엄마가 면접관, 최씨는 구직자 입장에서 ‘모의 면접’도 열심히 한다.

태교부터 초·중·고를 거쳐 대학, 취업, 직장생활까지 자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매니저맘’들이 늘고 있다. 아이의 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성적을 관리하는 입시 매니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명 ‘헬리콥터 엄마’들이 성인인 자녀의 인생을 ‘조종’하는 것이다. ‘신 맹모’들의 출현은 3040 엄마들의 문화를 크게 바꾸고 있다. ‘슈퍼맘 신화’에 지쳐 자녀 스트레스를 겪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교육 매니저 신드롬…“직업이 곧 학부모”

과잉 교육열로 산후조리원부터 인맥을 관리하는 젊은 엄마들도 생겼다. 강북에서 강남 산후조리원으로 원정 오는 ‘극성파’도 있다. 신필향(60) 한국산후조리원협회장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엄마들이 호텔을 ‘공동 구매’로 빌려 돌잔치를 치르면서 친분을 이어간다”며 “유학파나 전문직 엄마들이 교육 정보를 교환하고 인맥도 다진다”고 말했다.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맹모들은 좋은 학군과 학원가 밀집 지역을 찾아 이사와 전학을 불사한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의 키워드는 ‘학원 앞 자동차 행렬’과 ‘엄마 모임’이다.

대치동에서 5년째 학원을 운영하는 오미령(45) 원장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학급 모임에서 아이의 학교생활과 학원 정보를 얻고 방과 후 수업을 활성화시키려고 교사들이 은근슬쩍 흘리는 시험문제 정보가 오간다”며 “대치동 식당들은 엄마들이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성적이나 성향, 집안이 비슷한 아이 4, 5명을 짝 지워 엄마들이 소모임을 만든다”며 “시험 끝나면 아이들 사교를 위해 예술의전당 티켓이나 영화표를 끊어 보낸다”고 덧붙였다.

엄마들이 자녀를 관리할 수밖에 없는 세태도 문제다. 중2 아들을 키우는 학부모 이모(50)씨는 “엄마가 돕지 않으면 아이가 제대로 그 많은 일을 소화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매번 학원 시작 전 테스트하고, 중간에 리테스트하고…. 수준이 떨어지면 학원에서 퇴출되는데 자존심 상하고 갑자기 다른 학원을 알아보려면 좋은 곳은 2∼3개월 기다려야 한다. 학교보다 무서운 게 유명 학원이다. 아이가 한 번이라도 경고 받지 않게 숙제나 테스트를 통과하려고 노력한다. 중학생이 되면 국, 영, 수 A·B·C로 구분하는 게 유명 학교로 인식돼 누가 A반인지 관건이다. 공교육, 사교육 모두 레벨화로 초긴장 강박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되는 엄마들은 전업주부로 자녀 관리에 ‘올인’한다. 학부모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다.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수학의 정석’을 풀고, 학교 시험문제를 분석하고, 학원 교재를 면밀히 분석하며 ‘엄마표 과외’를 한다.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 일대와 목동 지역은 시험 기간이면 동네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학부모 진모(45)씨는 “4월 마지막 주가 대치동 중·고교의 중간고사 기간인데 시험 일주일 전부터 아침과 저녁시간에 양재천에서 운동하는 엄마들이 크게 준다”며 “마트도 안 가고, 모임도 안 나가며, 자녀와 시험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슈퍼맘’ 뒤에는 ‘슈퍼그랜드파파’가 버티고 있다. ‘아이의 추진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있어야 자녀 교육이 완성된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경기 성남시가 1월 발표한 ‘제2회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주의 48.6%가 취학 학생에게 한 달 평균 10만∼50만원 미만을 사교육비로 지출한다고 응답했다.

아이 성적이 엄마의 사회적 지위를 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중2 아들을 둔 학부모 김모(41)씨의 얘기. “일등 아이의 엄마가 일등 엄마인 정서는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엄마는 많은 엄마의 관심을 받는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전업주부와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면 아이가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해줘야 한다. 늦둥이 엄마는 큰애를 키우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어 엄마들 사이에서 잘 어울린다.”



‘취업 대리전’ 엄마도 구직 중?

자기 주도적 학습을 못하고 ‘엄마 주도적 학습’을 하던 아이들은 대학 전공도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 세 아이를 둔 학부모 송모(46)씨는 “엄마가 ‘올인’한 남학생이 대학 입학 후 공부는 뒷전인 채 PC방만 쫓아다닌다거나, 졸업반 때 자기 욕구를 쫓아 대학을 중퇴했다는 얘기가 가끔 들린다”며 “아이에게 ‘몰빵’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준비할 때면 엄마들은 ‘취업 전선’에 나선다. 채용 정보를 수집하고, 입사지원서나 자기소개서를 함께 쓰며, 면접시험장에 동행하기도 한다. 자녀에게 과도한 관심을 갖거나 간섭하는 과잉 보호형 엄마들이 늘면서 취업 세태도 달라졌다.

취업포털 커리어 이정우 대표는 “20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구직활동 시 부모의 관여도’를 조사한 결과 부모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모 권유로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거나 부모가 입사 기업을 정해주면 면접을 보는 구직자들도 있다. 최종 입사통지서를 받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 대신 기업에 채용 관련 문의를 하는 일도 있다. GS홈쇼핑 담당자는 “부모님과 동행해 면접시험장에 오는 구직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구직 활동 중인 자녀의 용돈이나 생활비를 대주는 경우는 흔하다. 직장인이 된 후 결혼해 독립할 때까지 부모와 계속 생활하는 2030 세대도 적지 않다. 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은 목돈을 모으려면 부모와 생활하는 것이 유리하고 식사, 빨래, 청소 등 생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매니저맘이 사회 트렌드가 되면서 자녀와 ‘탯줄’을 떼지 못하는 3040 엄마들의 불안은 점차 커지고 있다. ‘불안의 시대’, 2010년 엄마들의 초상은 ‘불안’이란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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