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역사소설 〈소설 허난설헌〉(금토, 전2권 각

권 7천원)이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의 저자 김신명숙 씨가 발굴하여 쓴 이 소설은 〈홍길동〉을 지은

허균의 누이이자 기껏해야 ‘여류시인’ 정도로 알려져 왔던 허난설

헌을 조선조 최고의 페미니스트로서 조명했다.

“지금까지 진정한 여성의 역사는 단절되고 지워지고 은폐되어 왔

습니다. 그런 까닭에 유교의 비윤리적이고 엄혹한 여성윤리에 묶여

있던 조선시대 사대부 부녀로서 철옹성 같았던 남성중심체제, 현모

양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선배여성 허난설헌을 접했을

때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김신명숙 씨는 이 반체제 여성을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되

었다. “유교를 국가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그가 매장

당했던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소위 여남평등 시대에도 그가

여전히 버려져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를 죽은 역사 속에서 불러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습니다.”

김신명숙 씨가 〈허난설헌〉에 착수할 무렵인 97년 봄은 이문열의

〈선택〉이 한창 논란이 되던 때였다. 김신명숙 씨는 허난설헌보다

수십년 뒤에 태어난 한 사대부가 여인을 화자로 내세워, 그가 당시

재주가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모양처의 삶을 ‘선택’하여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강변하며 페미니스트들을 훈계하는 내

용의 책을 접하고는 페미니스트 허난설헌을 소설화 하는 작업이 절

실하다고 느꼈다. 특히 이씨의 책 내용 중 ‘난설헌의 삶은 양가의

규수에게는 아무런 참고가 되지 못했다’는 구절을 보고 더 그러했

다.

허난설헌은 당대 제일가는 문한가였던 양천 허씨 가문 초당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나 불과 여덟살에 한문학 연구자들도 번역하기 버거

워하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이라는 시를 지어 여신동이라 불리운

천재였다. 그의 사후 동생 허균에 의해 편집된 시집은 중국에 전해

져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일본에서도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그에게 행복을 선물하지는 않았다. 15세 어린

나이에 안동 김씨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아내의 재능을 감당하지 못

한 남편과 금실이 좋지 못했고, 시어머니와도 불화했다. 설상가상으

로 아들과 딸을 먼저 보내고 배 안에 있던 아이마저 유산되는 한편

동생 허균의 모반사건이 터지면서 친정은 멸문의 화를 입었다. 생의

의욕을 잃은 그는 초당에 박혀 책만 읽다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는 여자가 시를 짓는 것을 금기시 했던 당시의 윤리에 저항해 평

생 시작(詩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하늘나라에서 죄를

지어 인간세상에 유배된 선녀로 자처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고 자기

애가 강했다. 그런 기질은 그의 시에 ‘나’라는 글자가 유독 빈번

히 등장케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유교가 아니라 여성을 숭배하는 도

교를 택하도록 했다.

또 그는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김성립과 짝이 된 것

이 한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숨통을 죄어오는

효부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새장에 갇힌 앵무새’에 비유하기도 했다.

김신명숙 씨는 허난설헌이 남긴 드라마틱한 삶의 족적들을 아직도

우리를 가로막고 서있는 강고한 여성문제들의 코드처럼 느꼈다. 그

리고 약 2년에 걸쳐 〈허난설헌〉을 완성했다. 소설은 허난설헌과

그의 몸종이었던 감정, 기생 두란향을 등장시켜 감동적인 자매애와

여성의 눈으로 역사 뒤집기를 시도한다.

“오늘날 이땅에 사는 딸들에게 신사임당과 황진이는 선명하게 각인

되어 있지만 허난설헌의 존재는 희미합니다. 신사임당이나 황진이는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두개의 여성상, 즉 성녀와 창녀의 이미지를 대

변하는 ‘착한 여자’와 ‘멋진 여자’이지만 허난설헌은 감히 남자

들과 똑같은 주체성과 욕망을 가진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나쁜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4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

리를 찾지 못하고 있죠.

소설을 쓰며 조선시대에 비단 허난설헌뿐 아니라 일단의 저항하는

여성들의 역사가 면면히 숨쉬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왔을 것이라

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조선 여성의 역사는 결코 굴종과 포기와 희

생 일변도의 역사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허난설헌의 현재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이 부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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