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때문에 포기한 기능성
스타일 때문에 포기한 기능성
  • 김효선 편집부장
  • 승인 2017.09.25 11:23
  • 수정 2017-09-2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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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자리에서 초면인 사람들은 명함을 주고 받는 것으로 첫번째 인사를 나눈다. 명함을 꺼내는 절차가 여자는 다소 복잡하다. 우선 한쪽 손에 들린 ‘정장백’을 열어서 명함지갑을 꺼내들고 명함 한장을 꺼낸 다음, 명함지갑을 핸드백 속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 핸드백을 다시 팔뚝에 안전하게 건 다음에야 명함이 들린 손을 내어밀 수가 있게 된다.

남자라면 주머니 어디선가 쉽게 꺼낸 명함지갑을 꺼내고 다시 쉽게 주머니 속에 명함지갑을 집어넣으면 명함교환의 절차를 마칠수 있다.

명함 꺼내는 시간의 남녀차이를 재본 일은 없지만 경험상 여자쪽의 시간은 상당히 길다. 여자 옷에는 주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고급스런 옷일수록, 정장일수록 여자의 옷에는 주머니를 달지 않는다. 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천을 덧대는 과정에서 ‘스타일’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스타일이 보기엔 좋을 지 몰라도 ‘기동성’이라는 면에서는 ‘완전 빵점’이다.

산업사회 이후 멋내기는 여자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 이전 시기의 귀족남자들은 치마도 입고 머리도 볶고, 스타킹도 신었으며 치렁치렁한 장신구도 많이 달면서 멋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노동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이전 귀족사회의 미학을 파괴시키는데 성공한 자본주의의 미학은 ‘기능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일하는 자의 모습이 아닌 귀족을 무위도식과 부패의 상징으로 매도했으며 그결과 오늘날의 ‘넥타이 유니폼’과 같은 남성정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상적인 남성상은 언제든지 일을 위해 달려 들수있는 ‘준비된 기동성’을 중시하게 된다. 인간의 본원적인 욕구라고 하는 꾸미기 욕구는 여자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남자는 일하고 여자는 꾸미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가장 선명한 성별 분업이기도 하다.

이 성별분업의 결과가 남녀정장의 주머니 숫자로 드러나 있다. 남자양복에 있는 주머니의 숫자를 세보면 족히10개 이상이다. 겉주머니와 안주머니, 앞주머니, 뒷주머니, 도장주머니까지 크고 작은 주머니들이 도처에 배치되어 이른바 수납공간을 최대화한 것이 남자의 정장이다. 반면 여자의 옷에는 잘해야 상의 아래 두개의 주머니 정도가 고작이며, 이나마도 클래식한 고급정장에서는 아예 사라져 버린다.

여자의 수납은 작은 핸드백에 의존한다. 정장에 어울리는 핸드백은 딱딱하고 각이 져 있으며 크기가 작아서 수첩하나도 제대로 들어가기가 힘들다. 명함, 지갑, 핸드폰까지 주머니에서 속속 꺼낼수 있는 남자정장은 두손을 자유롭게 해주는 반면 여자의 한쪽손은 핸드백을 쥐느라 자유를 포기한 상태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두 손의 자유란 얼마나 귀중한가? 무거운 짐을 들 수도있고 싸울 수도 있으며 무엇이든지 쥘수가 있다. 한쪽 손만 있는 경우는 그 절반의 자유 밖에없고, 그나마 핸드백을 잃어 버리지 않기위해 신경써야하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그나마 절반의 자유도 온전치 않다. 손의 자유를 잃어버린 여자들이 하이힐을 신고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보니 여자들 중에서도 높으신 분들의 행차에는 핸드백과 명함을 들고서 수행하는 비서가 필요하게 된다.

몇해 전부터 유행이 된 여자들의 바지정장은 은연중에 여자들이 느껴온 불편한 복장을 피해가고 싶은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여자들의 사회생활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여자들에게도 두손의 자유를 돌려줄 수 있는 기능적인 정장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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