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마약과도 같다”
“전쟁은 마약과도 같다”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04.16 10:19
  • 수정 2010-04-16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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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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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비글로 감독이 여성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여성 영화인들은 이중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물론 여성 감독이 이제라도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었다. 그러나 왜 (지금까지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제인 캠피언이나 소피아 코폴라 등이 아닌 캐서린 비글로가 첫 여성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어야 하는가에 대한 불편함이 남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글로 감독은 여타의 여성 감독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뱀파이어 영화인 ‘죽음의 키스’(1988)로 데뷔한 이후 ‘폭풍 속으로’ ‘스트레인지 데이즈’ ‘K-19’ 등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지극히 남성적인 액션 블록버스터의 한복판에 머물러왔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영화팬이 아니라면 이 영화들이 여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감독이 가려진 영화들이었다. 그의 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작품은 여성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블루 스틸’뿐이었다. 그리고 새 영화 ‘허트 로커’(사진)에서 비글로 감독은 현재진행형인 이라크 전쟁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전쟁은 마약과도 같아서 때로는 그 격렬함에 중독되곤 한다.”

강렬한 문구로 시작되는 영화 ‘허트 로커’의 주인공은 이라크 전장에서 폭발물 제거를 전담하는 EOD 부대원들이다. 영화 초반 폭발 사고로 팀장을 잃은 부대원들은 괴짜 팀장 윌리엄 하사(제레미 레네)를 맞이한다. 첫 임무에서부터 부하 대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로봇을 이용한 사전 탐사 대신 직접 현장으로 들어가는 윌리엄 하사는 마치 폭탄 제거를 하나의 게임처럼 생각하고 전쟁의 아드레날린에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 같은 팀 일원인 샌본 병장과 앨드리지 상병은 “언젠가 그 때문에 우리가 죽고 말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팀 내 갈등은 극도에 달한다.

‘허트 로커’는 여느 전쟁영화와 확연히 다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전쟁영웅도, 격렬한 총격전도 없다. 군인들이 싸우는 대상은 이라크 군이 아닌 무생물의 폭탄일 뿐이다. 폭탄이 왜 거기에 있어야 했는지를 말하기보다 그들이 폭탄을 해체하는 작업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핸드 헬드 카메라의 흔들리는 화면에 머리가 어지럽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감의 끈을 놓치 않는다. 영화의 긴장감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 아닌 조용한 거리의 분위기에서 형성된다. 이들이 폭탄을 제거하는 동안 거리에서, 자기 집 창문에서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묵묵한 표정으로 이들을 쳐다본다. 누가 당장 폭탄의 원격조종 스위치를 누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적이고 누가 무고한 시민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전쟁의 진짜 공포는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마트에서 수백 개의 시리얼에 둘러싸여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 평범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윌리엄 하사의 뒷모습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공포일 것이다. 감독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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