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둔 날 오후였다. 회사일 관계로 외출을 하기 위해 차를 주차장에서 끌고 나오던 중이었다.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창문을 굳게 닫고 좌회전을 시도했다. 왼편에 있는 승용차 외에는 어떤 장애물도 보이지 않아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순간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내 차의 오른쪽 안개등 부분과 그 오토바이가 충돌하였고, 운전자는 2백미터 밖 도로에 미끄러졌다.

나는 처음 겪는 사고라 무섭기도 하고, 금품 갈취를 목적으로 하는 오토바이 사고가 많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긴장된 마음으로 차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오토바이 운전자가 대뜸 일어나서 “아줌마, 삐소리 못 들었어요?”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오지 말라는 신호로 삐소리를 냈다고 소리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갔고, 잠시후 경찰관을 데리고 왔다. 경찰관은 내 차 바퀴에 까만 선을 긋고 그 오토바이 운전사와 내게 경찰서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그래서 오토바이 운전자를 옆에 태우고, 영등포 경찰서로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뜻밖의 제의를 했다. 자신은 근처 조명회사에 다니는 직원인데,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으니 오토바이 수리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나중에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니 연락하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대로 사고를 마무리 지으면 안될것 같았다. 잘못하면 뺑소니로 몰릴수도 있다고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서에 사고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것이 시민이 해야 하는 바른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경찰서에 들어서자 신고를 받는 경찰관은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약간 비웃음을 머금은 채 ‘모든 사고의 원인은 99% 아줌마들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고의 경위나 원인에 대해선 묻지도 않고 무조건 “아줌마가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1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고 우수한 직원이라는 평도 들었는데 그 날은 아줌마라는 이유로 멍청이 취급당하는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평소에 여성운전자들을 손가락질하며 “야,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차를 왜 끌고나오느냐”고 하는 경우도 많이 겪었지만, 이 날은 ‘아줌마’라는 호칭과 그에 따른 대우들이 무척 불쾌했다. 아줌마라는 호칭때문이 아니라 아줌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하다는 그들의 인식이 나를 슬프게 한 것이다.그 ‘아줌마들’이 이 나라의 근간이 되는 가정의 주인이며, 그 가정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임을 왜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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