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마저 불멸의 TV와 컴퓨터가 꺼질 줄을 모른다. 대형마트에서조차 윷이며 제기, 연보다는 일본에서 건너 온 화투와 카드를 먼저 진열한다.

올 설에는 온 가족이 기억에 남을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어른들의 동심(童心)과 아이들의 호기심이 모여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인기 3D게임과 최신 휴대전화에 빼앗긴 가족의 정도 되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가족은 ‘까치설’에 모여 설 연휴를 함께 보낸다. 동요 덕분에 친근해진 까치 설날의 어원은 ‘까치’와 연관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치설, 아찬설’에서 왔다. ‘아치’는 ‘작은(小)’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며 본래 뜻을 잃어버린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고, 윤극영 선생이 작사 작곡한 노래에 쓰이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까치설’이 생긴 것이다.

혹시라도 까치설 아침에 시골 집 앞 골목에서 “복조리 사려”하는 복조리 장수의 음성이 들리면 아이의 손을 잡고 나가보길 권한다. 한국세시풍속대계 정월 편을 보면 우리네 조상들은 설날 이른 아침에는 벽에 복조리를 걸어 장수(長壽)와 재복(財福)을 빈다고 쓰였다. 조리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엮어 만든 쌀을 이는 도구인데, 정초에 새로 사 걸고 묵은 것은 지난해의 액운과 함께 내다 버리는 세시풍속이 있다.

까치설날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우리 아이를 가족들의 품으로 끌어오기에는 ‘도깨비’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다. ‘설에 일이 많으니 일손을 좀 도우라’는 의미에서 생겨났을 법한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이야기와 ‘설날 밤에는 이름이 야광인 귀신이 아이들의 신발을 두루 신어 보다가 발 모양이 딱 들어맞는 것을 신고 가 버리면 그 신발의 주인은 불길하다’는 민담을 풀어놓으면 ‘아이’인 줄도 잊고 살던 우리 아이들이 눈썹과 신에 일이 생길까 유쾌한 염려를 하지 않을까.

이때 복조리는 더욱 유용해진다. 복조리는 한 해의 복이 쌀알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와 함께 농경민족의 주된 곡식인 쌀을 다루는 도구로서 중시되기도 했지만, 설과 같이 신성한 날에는 귀신을 쫓기 위한 방책으로도 쓰였다. 복조리를 집안에 걸어두면 야광귀 등 호기심 많은 귀신들이 집안에 들어오려다가 체의 구멍을 세는 데 정신이 팔려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전한다.

오는 까치설에는 잠든 아이의 눈썹에 흰 떡가루를 발라 두자. 올 설에는 가족이 모여 복조리를 달고, 밤을 지키며 해지킴(수세, 守歲)하면서 웃음꽃 만발한 경인년을 함께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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