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통해 새로운 세상 봅니다"
활동보조제 영리화 될까 걱정

 

“오늘은 어떤 아이섀도로 할까요? 보라색, 분홍색?”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 아파트. 마주앉은 최진영(뇌성마비 1급)씨의 화장을 돕는 노유리(건국대 교육공학과4)씨가 묻는다. 지난 2년간 꼬박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다. 노씨는 최씨의 활동보조인이다.

‘활동보조’란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서비스다. 최씨는 180시간 활동보조를 받는다. 활동보조인에게 주는 임금 중 120시간은 보건복지부가 보장하고 나머지는 서울시가 지원한다. 최씨도 월 8만원을 부담한다.

어느새 최씨의 눈꺼풀에 보라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젠 눈썹을 그릴 차례. 노씨는 “제일 자신 없는 게 언니 눈썹 그리는 부분”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최씨는 살짝 불안한 눈빛을 보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그 모습에 친자매 느낌이 묻어난다.

최씨는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저녁보다 시계바늘이 두 배 빨리 움직이는 것 같은 아침. 노씨의 손을 빌려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 최씨에겐 아침 시간이 더 짧다. 그래도 오늘 아침은 커피 한 잔과 달걀 프라이를 먹기로 했다.

요리는 노씨 몫. 최씨가 다가가기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노씨는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꺼내고 기름을 붓고 달걀 두 개를 깬다. 그녀들의 아침이다.

컵 네 개에 접시 세 개. 어제 설거지와 오늘 아침식사 설거지 역시 노씨 담당이다.

“늦겠어.”

시계바늘이 숫자 4를 가리킨다. 오전 9시 20분.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최씨의 출근시간은 10시다. 10분 늦을 때마다 500원씩 벌금을 내야하는 최씨는 노씨를 독촉한다. 노씨도 마음이 바빠진다.

그 틈에 활동보조를 이용하면 어떻냐고 물었더니 최씨는 “내가 못하는 것을 해주니까 좋다”며 “대부분 출근 준비를 보조받고 아침에 할 수 있는 간단한 집안일도 도와준다”고 고마워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노씨는 보통 행당역에서 최씨와 헤어지지만 오늘은 왕십리까지 보조하기로 했다. 보통은 최씨 혼자 전동휠체어를 운전해 출근한다. 출근 시간이 임박한 오늘은 빨리가기 위해 노씨가 ‘대리운전’을 맡았다. 눈이나 비가 올 때엔 가끔 사무실까지 동행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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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턱이 많이 휙 휙 지나가는 차도를 이용한 두 사람. 달리듯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노씨가 한 걸음 빨리 움직인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러야 하기 때문. 최씨보다 한 걸음 빨리 달리는 구간은 행당역에서 3번 사무실이 있는 왕십리역에서 1번, 사무실 건물에서 1번이다.

“어제는 누가 엘리베이터를 10분이나 잡고 있었어요. 출근 시간은 다가오지, 마음은 급하지, 다른 수단은 없지. 지하철 한 정거장이라 제가 진영언니 집에서 사무실까지 20분이면 될 거리를 어젠 45분이나 걸린거 있죠. 어제 같지만 않다면 오늘은 지각비를 면할 수 있을 텐데….”

노씨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엘리베이터 운’이 좋았다. 한 걸음 앞서 달려가 사무실 문을 열고 노 씨는 이렇게 말했다.

“10시 6분! 소장님 도착하셨어요. 지각 아니죠?”

사무실에 도착한 노씨는 고교 졸업 직후인 5년 전 ‘시급이 높다’는 친구의 말에 활동보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2~3개월 하다 잠깐 쉰 일을 2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오전 시간에 주로 활동하며 때론 다른 장애인을 위해 대타를 뛰기도 한다.

“활동보조인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어요.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열풍’이었다고 해야할까요. 당시 시급이 3500원이었거든요. 비싼거였어요. 지금은 한 8000원 정도가 책정돼 있어요. 수수료와 4대보험료 등을 제하고 나면 시간당 6000원 안팎으로 남아요.”

최씨는 노씨가 처음 활동보조를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노씨도 처음 만났을 땐 “언니 언어장애 때문에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힘들었다”고 한다.

“몸도 많이 불편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까지 한다는 거예요. 정말 열심히 사는 언니를 보면서 야학은 어떤 곳인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저도 야학에 다녀요.”

물론 노씨는 배우는 쪽이 아니고 가르치는 쪽이다. 활동보조를 하면서 장애인에 대해 알게되고 이젠 어딜가든 “계단이 먼저 보이면 언니랑 함께 올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시선 자체도 장애인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요즘 멀티플랙스에 가보면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정말 많아요. 활동보조인도 많아지고 전동휠체어도 보급 됐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요즘 정부가 활동보조제를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영리로 운영하려고 해 안타까워요. 그렇게 되면 활동보조인도 일하기 힘들어지고 이용자도 서비스 받는 부분이 한정돼 불편해 질 텐데 말이죠.”

최씨를 통해 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 노씨. 그는 “직업은 졸업한 후에나 생각해 보자”는 낙천적 성격이지만 요즘은 장애인 단체에서 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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