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맞은 여세연 오유석 대표

그동안 여성 정치참여를 위한 제도개선을 이끌어냈지만 논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얼마나 많은 후보를 낼 것인가에서 어떤 후보를 낼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또한 당선된 여성 정치인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도 과제다.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오유석(사진) 여세연 대표는 “정치 본연의 역할, 즉 정당이 여성 후보자를 육성·발굴하고 여성 정치인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발전적 해체를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창립했으나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말로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여세연은 여성 정치참여를 위한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 비례대표 50% 할당 및 교호순번제 강제, 선출직 여성할당 30% 권고 등을 법제화했고 여성 정치발전비 10% 확보, 여성추천보조금제 도입 등 제도 변화를 이끌어낸 주체였다.

물론 여세연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여성정치 세력화’에 한목소리를 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 대표는 “여성할당제 등 제도 개선에 여성계 양대 단체가 자기 역할을 다하며 연대해줬기에 작은 여세연이 간사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며 의미를 뒀다.

제도개선이라는 뿌듯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 대표는 2004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 당시를 가장 어려웠던 일로 꼽았다.

“도덕성, 반부패성, 인권성, 과거 독재정권 기여도 등을 기준으로 낙천낙선 대상자를 정했다. 여성 명단도 나왔다. 그런데, 시작부터 양과 질 논쟁이 시작됐다. 여성계에서는 양을 택했다. 후보 자체가 소수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똑같은 잣대를 댈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어려웠지만 질보다 양을 선택했던 당시 기준이 여성정치할당제를 요구하는 근거가 됐다. 이로써 여성계는 2008년 18대 여성 국회의원 13.7%, 2006년 여성 지방의원 14.5% 등 꾸준히 두 자릿수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 여성 정치인을 수적으로 많이 배출할 것이냐 아니면 여성의제를 제도화시킬 여성정치인을 배출할 것인가라는 양과 질 사이의 논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 의원이 거론되고, 서울시장 후보로 한명숙 전 총리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 입장이 전혀 다른 두 여성 후보를 여성계는 모두 평등하게 지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박 의원이나 한 전 총리가 여성계 지원을 요청하면 응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계 차원에선 두 후보자 지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필요하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양과 질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여성문제를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를 넘어서 바라보자는 논의의 시작점일 수도 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여세연. 이제는 선출직 여성 후보자 30% 권고를 넘어 남녀동수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기존 정치세력들은 ‘여성 후보가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오 대표는 “정치 초년생이 의회로 입성하는 비율이 높은 구조에서 남성 변호사 한 명을 정치 신인으로 발굴할 때, 왜 여성 변호사 한 명을 못 뽑나. 남성 변호사의 ‘준비됐다’는 기준은 대체 뭔가”라며 “게다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여성정치발전기금과 여성추천보조금 등은 어디에 쓰고 여성 후보가 없다는 소리만 하느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당선자들과의 교감도 남은 몫이다. 그동안 여세연 등 여성계 추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한 여성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 정치인을 통한 여성 정치인 발굴 육성을 위한 제도개선은 물론 의회 내 여성 의제 설정에서 역할이 미미했다는 반성이 나왔다.

“여성계 추천 여성 정치인이 여성의제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호주제에 반대하는 여성도 나왔을 정도다. 여성 의원도 여성계와의 소통에선 아쉬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2010년에는 여성계와 여성 정치인의 소통을 넓힐 수 있도록 활동할 것이다.”

여세연은 5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창립 10주년 기념 ‘여성이 세상을 연다’란 행사를 개최하고 ‘여세연! 여성정치운동 10년을 말하다’기념백서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