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보는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의 차세대 톱 모델을 발굴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인 ‘도전 슈퍼모델’이다.

미인대회 틀을 빌려온 프로그램 속성상 즐겨보는 것에 대해 종종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지만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드라마, 경쟁 속에서 드러나는 날것의 인간 본성, 무엇보다 매회 화면을 장식하는 에지 있는 언니들의 모습은 거부하기 힘든 매력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특히 매 시즌 10여 명의 출연자 중 서너 명 이상이 비혼 모임을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커밍아웃한 출연자는 이후 동료 출연자와 쇼 진행자로부터 우호적인 지지를 받았다. 수천 대 일의 예선 경쟁을 뚫고 올라온 점을 감안하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미국 여성 중 비혼모의 비율을 짐작할 만하다.

2008년 미국 출산아동의 50.4%가 비혼모의 자녀라는 미국 보건통계센터의 통계가 셈 어림을 돕는다. 비혼 모임을 스스럼없이 공표할 수 있고, 비혼모를 우호적으로 지지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놀라웠고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 사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입양되는 아동의 90% 이상이 비혼모 자녀라는 사실이다. 비혼모 자녀의 높은 입양 비율은 60년대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0년 현재에도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60~70년대 입양 아동은 비혼모 자녀와 시설아동(기아)이라는 두 축이 주요한 발생 유형이었다. 시설 아동의 입양 수는 감소했다. 경제적 발전으로 아동을 가정과 사회 안에서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이 나아진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비혼모 자녀의 입양 수치는 여전하다. 여러 요인 중에서도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지난해 한 고등학교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임신·출산한 여고생에게 자퇴를 강요했던 사건은 비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부정적인 사회인식과 전무한 지원정책은 그대로 둔 채, 왜 당신은 비혼모임을 숨기려 하느냐며 꾸짖는 것이 우리 법제도의 현실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 새로이 시행된 가족관계증명서 상에 비혼모 기록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자 보인 정부의 입장이었다. 다행히 최근 법 개정이 이루어져 일부 증명서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으나, 2년 뒤로 시행이 유예되었다. 일부 증명의 범위와 방식 등 구체적 내용도 담겨져 있지 않다. 당장 오늘도 비혼모들은 가족관계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취업전선에서 편견에 맞서 홀로 싸우고 있다.

최근 저출산 대책과 맞물려 비혼모에 대한 지원이 공론화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비혼모 정책은 ‘여성의 임신·출산권, 아이를 직접 양육할 권리, 아이가 부모와 함께 살 권리’라는 인권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출산정책과 연동된 비혼모 지원은 근시안적이며 여성을 출산의 수단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인 한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지인 중 성소수자가 한 명도 없다면 인간관계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나의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온전한 자신으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비혼모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만간 한국판 도전 슈퍼모델 쇼에서 당당히 커밍아웃 하고,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혼모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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