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배경 속에 가려진 원작의 참 재미
새로울 것 없는 ‘악녀’와 ‘살인 기계’ 유감
인기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일은 언제나 부담되는 작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백야행’을 영화로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원작의 팬들은 환영과 걱정의 눈빛을 동시에 보냈다.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진 인물이며,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백야행’은 ‘일드’ 팬들에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제작자 강우석은 이 작품의 감독으로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신인 감독을 선택했다.
걱정과 부담, 기대를 안고 출발한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방향이 무엇인가는 첫 장면에서부터 답이 나온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울려 퍼지는 새하얀 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여자 미호(손예진)의 나신과 컴컴한 지하방에서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남자 요한(고수)의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 첫 장면은 그 영상미만으로도 관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원작의 팬들은 의아함을 느낀다.
특히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미호와 요한의 관계, 그리고 미호의 캐릭터다. 영화 속의 미호는 14년 전 둘의 약속보다는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주변의 남자들을 이용하는 ‘악녀’가 되어버린다. 요한은 미호의 요구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10대 소녀를 강간하기도 하며 사랑과 죄의식 사이에서 몸부림치지만 미호에게서는 연민과 후회를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사랑을 안타깝게 바라보아야 했던 원작과 달리 영화 속 요한은 연인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살인 도구로 변해버린다.
기본적으로 극적인 구조를 가진 원작 덕분에 영화 또한 평균 이상의 재미를 가진 작품으로 탄생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캐릭터에 몰입되었고 화려한 스타일과 장중한 배경음악이 덧입혀졌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넣으려고 한 탓인지 그 모든 것이 어울리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고 만다. 감독 박신우, 주연 손예진·고수·한석규, 18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