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페미니스트’는 독일에 가면 ‘평범녀’죠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독일에 가면 ‘평범녀’죠
  • 조승미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10.30 10:18
  • 수정 2009-10-30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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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폄하 논란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쓴 베라 홀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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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올 여름 한국 폄하 논란이 크게 일었던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문학세계사)을 쓴 독일인 베라 홀라이터(Vera Hohleiter·30)씨. 책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인터넷상의 논란거리를 기사화한 언론의 대응을 비판했던 한 블로거의 ‘미수다 논란, 창피한 언론’은 4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06년 한국에 와서 4년째 체류 중인 베라 홀라이터씨는 현재 KBS 2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며 TBS 라디오 방송의 영어뉴스 캐스터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독일 여성잡지에 서울에서의 생활과 여성 화제나 트렌드에 대해 기고도 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완전한 아웃사이더도, 완전한 인사이더도 아닌 다분히 흥미로운 입장과 관점에서 책과 한국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번 책이 독일에서 출판돼 2쇄를 찍는다고 들었다. 반응이 궁금하다.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소감을 받는 게 즐겁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 독자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들,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많은 편지를 받았다. 가장 멋진 소식은 엄마가 한국인이고 아빠가 독일인인 여성 소식이었다. 그 여성은 주근깨가 있는 외모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매일같이 안 예쁘다 이야기를 듣곤 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서 ‘주근깨가 안 예쁘다’는 생각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됐다고 해 기뻤다.”

-소개팅 문화, 빨리빨리 해치우듯 하는 결혼식 문화를 한국의 특이한 문화로 꼽았다. 그 외에도 특이하게 느껴지는 한국문화가 있나.

“독일에 있을 때 한국의 어린 학생들이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해 밤늦게까지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거짓말일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며, 실제로 열 살 남짓한 어린이들도 빡빡하게 공부 스케줄을 잡고 정말 많이 공부하는 것을 봤다. 독일에서는 그 나이 어린이들은 자유롭게 놀고 자유롭게 공부한다. 너무 많은 공부로 학생들이 불행하게 느낄 것 같다.”

-한국 애인을 찾아왔다고 들었다. 책에서 프랑스 여성 철학자 보부아르까지 언급하며 남자친구를 찾아 한국에 온 것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 부분이 흥미롭다.

“한국에 왔을 때 어떤 특별한 용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별로 그런 생각도 의도도 없었다. 올 당시 남자친구 가까이에 있고 싶었고,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가족과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부모님은 68세대(1960년대 말 서구에서 평등과 성해방, 인권 등의 진보적 개념들을 가치관으로 삼고 사회변화를 주도한 세대)로 히피다. 자유분방한 교육을 했고,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험하고 도전하라’고 했다. 여성운동이 유행일 당시를 살아본 분들이라 그런지 ‘남자와 똑같이 하고 싶은 걸 하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어릴 적부터 여행을 많이 했다. 혼자서도 다녔고, 주로 여행사가 자주 가지 않는 곳으로 골라서 갔다.(웃음) 또 열 살에 분단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일 등을 보며 베를린에서 자랐지만 파리에서도 공부하기도 했다.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가지 말란 소리 등 아무 말도 안 했다. 여기저기 혼자 자주 떠나고 뮌헨 등 여러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 것도 같다.”

-파리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나. 한국어는 얼마나 공부했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일어난 문예사조 다다이즘에 대해 공부했다. 프랑스 시인 아폴리나르 등의 아방가르드 시로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반전시 등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전쟁을 다뤄서 그런지 매우 슬프다. 한국어는 한국어학당에서 처음 배웠다. 독일어나 프랑스어, 대학 때 배운 중국어에 비해 한국어는 경어가 발달했는데, 직접 사용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혹여나 무례하게 보일까봐 속상하다.”

-채식주의자로 조계사 근처에서 자주 식사를 하신다는데,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무엇인지.

“비빔밥을 제일 좋아한다. 베건(모든 동물성 제품을 먹지 않는 가장 철저한 채식주의자)이라 달걀도 넣지 않는다. 엄마와 언니도 채식주의자다. 그렇지만, 아빠와 강아지는 육식을 한다.(웃음) 조계사에는 정말 자주 갔다. 식사도 그렇지만, 사찰에 가면 마음이 참 잘 풀린다. 모든 생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참 맘에 든다. 독일에서는 불교가 유행하고 있는데, 일종의 ‘모던한’ 것이라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채식을 해서 그런지 스타일이 좋다. 헤어스타일도 요즘 말로 ‘시크하다’(세련되고 멋지다).

“고맙다.(웃음) 어떤 한국 남성분들은 ‘남자같아 보인다’며 ‘머리를 기르는 게 좋겠다’ ‘머리를 길러라’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언행은 조금 실례인 것 같다. 한국 남성들이 변해야 할 점이 있다면.

“한국 남성들은 집안일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명절 때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 일을 하는 여자들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돈도 벌어야 하고 가사도 해야 하고 이중 부담이 될 것 같다. 모든 여성이 그래야 하지만, 남자가 요구하는 것을 거부할 때도 있어야 한다.”

-페미니스트인가.

“스스로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지만, 페미니스트의 생각과 주장이 논리적으로 보인다. 나 정도의 생각은 평균적인 독일인의 생각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여기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독일에 가면 평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여행지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어디였나.

“모든 나라들이 특별하게 보이지만, 제일 인상 깊었던 곳을 꼽자면 아프리카 카메룬이다. 수개월 일 때문에 머물렀는데, 그 곳 사람들의 긴장하지 않고 개방된 삶을 사는 분위기가 아주 맘에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결혼은 생각이 있는지.

“두 자매를 다룬 소설을 쓰고 있는데 1~2년 후 발표할 생각이다. 결혼보다는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이성 또는 동성 커플이 동거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부부와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같은 느슨한 형태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독일어 통역 손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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