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영화 같은 유쾌한 ‘인권영화’
가족영화 같은 유쾌한 ‘인권영화’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9.25 10:52
  • 수정 2009-09-25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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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펭귄’
국가인권위 첫 장편영화 시도
사교육열풍·황혼이혼 등 버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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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아홉 살인 초등학교 2학년 승윤의 삶은 혹독하기만 하다. 유치원 때부터 해온 영어는 물론, 우뇌 발달을 위한 발레, 태권도를 영어로 가르치는 ‘태글리쉬’까지 5개가 넘는 학원을 옮겨 다니는 매일의 일상 속에 자신이 선택한 삶은 없다. 미술학원에서 장래 희망으로 소방관을 그렸다가 “엄마가 실망할지 모르니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듣는 승윤에게는 꿈을 꿀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삼겹살의 소주’라는 한국 사회의 집단에서 당연시되는 회식문화가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채식주의자에 체질적으로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훈은 회식 자리에서의 별난 행동으로 집단에서 소외된다. 집단의 암묵적인 규율에 반하는 그의 행동이 못마땅한 선배들은 술을 못한다는 그에게 술을 강요하고 일부러 고기 집과 횟집을 찾아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에 시달리는 승윤의 이야기는 많은 아이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이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치 않는 술 강요로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날아라 펭귄’(사진)에는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헬리콥터 맘’, 가족과 생이별한 채 돈 버는 기계가 되어버린 ‘기러기 아빠’, 그리고 황혼이혼의 위기에 몰린 노부부 등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드러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 시리즈의 첫 장편 결과물인 ‘날아라 펭귄’은 초등학생 승윤의 이야기로 시작해 승윤 엄마의 직장으로 배경이 이동했다가 다시 회사 과장의 가정 속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사람을 연결고리로 집단과 집단을 이동하는 전개 방식은 이전 시리즈와 다른 ‘장편’으로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옴니버스와 장편의 장점을 차용해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임순례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달라진 점은 영화의 길이나 형식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시리즈들이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영화에선 보통 사람들이 겪는 보편적인 스토리를 담아냈다. “인권영화는 항상 지루하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깨고 싶어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임 감독의 이야기처럼,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영화 속 캐릭터는 전 세대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날아라 펭귄’은 심각하게 목소리를 높이지도, 관객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부분을 공론의 장으로 가져와 ‘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제안할 뿐이다. 그러나 사교육 문제, 기러기 아빠, 황혼이혼 등 최근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회문제들을 유쾌하게 버무려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서 멈춘 채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한 점이 아쉽다.  각 에피소드 속의 갑작스런 화해와 해피엔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감독 임순례, 주연 문소리 등, 전체 관람가,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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