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14좌 완등 앞둔 산악인 오은선
히말라야 14좌 완등 앞둔 산악인 오은선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09.08.28 12:03
  • 수정 2009-08-28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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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오는 것이 최고의 피날레 아닌가요?"
2008·2009 두 해 걸쳐 8좌 완등 ‘기적’
"산이 나를 받아들여줬기에 가능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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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만난 산악인 오은선씨의 첫 인상은 ‘날다람쥐’란 애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아담하면서도 빈틈없이 날렵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수없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을 법한 철녀(鐵女)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그래서 예상을 한참 비켜가서 더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5좌 완등 후, 즉 2007년 K2(8611m) 등정 때 14개 좌 완등을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8400m 이상의 고산을 무산소 등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탁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그게 되더라고요. 수면 때만 빼고 산소마스크를 썼었는데, 머리가 아프고 발가락이 저렸어요. 그래서 마스크를 수차례 썼다 뗐다 하다가 정상 바로 아래 단계에서 아예 마스크를 떼고 등반했더니 아픈 증상들이 없어지더군요. 힘은 들었지만 등정 때 경험하는 보통의 그런 수준이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깨달은 거죠. 더구나 산을 내려와서도 별 후유증이 없어서 이런 상태라면 14좌 완등이 그리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2008년 9좌 완등(마나슬루 8163m) 후 비로소 14좌 완등에 도전하겠다고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계획서를 쓰면서 속으론 2009년쯤이면 다 마치겠구나 하면서도 2010년까지로 스케줄을 밝혔고요. 그게 바로 굴레이자 ‘족쇄’(?)가 된 거죠(웃음).”



무심코 말한 14좌 완등, ‘족쇄’ 돼

13좌 중 11좌를 무산소 등정

예정대로, 아니 예정을 한 발짝 앞서서 목표를 이뤄나가다니…. 그 자신도 “내가 억세게 운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자인한다. 늘 결정적 순간엔 운이 따라줬다는 것이다. 가령, 그와 경쟁자들의 관계도 그렇다. 이미 12좌를 오른 여성 산악인으론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덴브루너와 스페인(그는 여기에 꼭 ‘바스크’ 출신임을 밝히라고 덧붙인다)의 에드루네 파사반이 있는데, 칼덴브루너는 에베레스트와 K2를 남겨놓고 있어 사실상 올해 완등을 도전하기엔 이미 시기적으로 힘들다.

파사반의 경우, 시샤팡마와 안나푸르나를 남겨놓고 있는데,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중국 당국이 입산을 허락하지 않아 한 해를 허비했다. 비로소 올 봄 입산이 허락돼 이번 가을에 안나푸르나를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그와 다시 한 번 산 한가운데서 마주칠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시샤팡마(8027m) 등정 때 파사반과 산 속에서 처음 마주쳤어요. 키가 170㎝가 넘어 거기에 큰 배낭을 메고 있으니 웬만한 장정 못지않더군요. 그 친구가 아마 날 보고 속으로 웃었을 거예요. 어른과 아이가 같이 있는 것 같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 친구 눈빛이 참 맑더군요. 어떤 선배는 그 친구 사진을 보곤 나와 같은 분위기가 난다고도 그래요. 산에 대한 열정이 담긴 눈빛 아우라가 같다나요(웃음).” 



여성신문 미지상 수상

“여성 세계 최초”

새 길 개척에 자부심과 사명감

그가 유별난 행운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자연이 그를 유난히 너그럽게 받아들여 준 것일까.

“서양인들은 산을 도전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죠. 실제로 산에 대해 ‘정복하다(conquer)’란 말을 쓰기도 해요. 우리 산악계 정서론 그러면 큰일 나죠. 예전 우리 자랄 때 앞산, 뒷산 늘 바라보던 산, 잠시 벗 삼아 휴식을 취하던 곳, 그런 곳이죠. 그런 산이 8000m 이상쯤 되면 당연히 인간이 산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 받아야 등정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산이 나를 받아들였기에 이제까지의 등정이 가능했다고 봐요.”

그래도 그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4년 에베레스트 등정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연히 느끼게 해줬다. 그 후에 부담해야 할 부채감에 대해서까지.

5월 20일 아시아 여성으론 최초로 8848m의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정했지만, 정상에서 하산한 지 30분 만에 산소통의 산소가 바닥나더니 손발이 저려오면서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가 고용한 셰르파도 달아난 상황에서 캠프 50m를 남겨두고 쓰러져 “살려달라” 울부짖었다. 그때 셰르파 한 명이 달려와 급히 산소를 대주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오은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육체적 고통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정상에 오르기 직전 계명대 산악부 박무택 대장이 로프에 숨진 채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의 시신 앞에서 펑펑 울 수밖에 없었어요. 내겐 다른 선택이란 없었죠. 그냥 계속해서 올라가는 수밖에. 장정 열 명도 들기 힘든 그 시신을 끌어내올 수도, 또 충격에 빠져 다시 내려갈 수도 없었죠. 혼자 내려가면 오히려 더 위험한 지경이었죠. 거의 죽다 살아났다 할 수 있죠.”

그는 혼잣말처럼 “목표(에베레스트 정상)를 향해 가고 싶었던 것 역시 사실”이라고 했다. 귀국 후, 이런 그를 두고 어떤 이들은 “그런 지경에서도 정상까지 가고야 마는 무정하고 독한 여자”라고도 했다. 특히 박 대장의 유족을 위해, 사고 원인 규명에 보탬이 되기 위해 그가 반사적으로 찍은 박 대장의 마지막 모습은 “그냥 보통 여자가 아니고 아주 비정한 여자”란 수군거림과 함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는 그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계명대 쪽에 넘겨줬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며.

그러나 그때보다 정신적으로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동료 고미영씨가 지난 7월 낭가파르바트에서 추락사한 사고다. 고씨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의 눈시울이 눈에 띄게 붉어져 경쟁이라든지 억대의 등정 비용이라든지 당시에 이슈가 됐던 질문들을 계속하는 것이 정말 잔혹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정말 실감이 안 났어요. 헬기가 오고 구명활동이 벌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만큼 속상하고 안타까웠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을 다 지원한 후 정작 미영이의 시신이 내려오는 날엔 먼저 빠졌죠. 그래도 등정을 접고 가는 것이 의미가 없기에 다시 시작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미영이가 생각나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눈물이 나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웠죠.”

그는 “8000m 이상의 히말라야 고산을 오르는 데 명예와 순위는 큰 문제가 아니다.‘생명’을 담보로 하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단지 ‘여성’ 파트에서 ‘세계 최초’라는 그 명분에 매달린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라며 “이것 자체가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14좌 완등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한국 여성으론 최초로 7개 대륙 7개 최고봉을 밟아 2005년 여성신문사의 세 번째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미지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그의 도전이 이렇게까지 멀리 나가리라곤 예상 못 했었다.   



“독한 여자” 오해는 억울

14좌 앞두고 초심으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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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그의 마지막 시험대 안나푸르나는 1999년 여성 산악인 지현옥씨 등 한국인만 14명이 희생된 곳이다. 이번 가을 등정도 원래는 지씨 추모 10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등정으로 여성산악회와 함께하려 했다. 그런데 KBS, 조선일보 등 20여 명이 훌쩍 넘는 언론팀이 등정에 가세하면서 배경미 회장을 비롯한 여성산악회 회원들은 베이스 캠프까지만 오씨와 동행하는 응원부대로 한 발 물러서야 했다.

그는 이처럼 등정 현장이 북적거릴 상황에 대해 “사람이 많으면 일도 많고 탈도 많을 것”이라며 사고에 대한 걱정, 이로 인한 집중력 저하를 염려했다. 등반은 “심판 관중 무대도 없고, 대자연과 나만 있기에” 일반 스포츠와는 다른 관점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여러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여 한 가지 원칙만은 정했단다.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르면 무슨 소감이 나올 것 같으냐고요? 가봐야 알지 나도 몰라요. 5분간 서있기도 벅찬 곳에서 미리 준비해 연습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우리 국민들에게 가급적이면 힘차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기본 원칙은 세웠어요.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 삼창하는 것보다, 그 어떤 피날레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으레 예상하듯 고산 정상에서 ‘희열’을 느낀 적이 없다. 그의 소회는 담담하며 솔직하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것이 기쁘고, 또 힘겨움의 끝이란 것이 기쁠 뿐이죠. 정상에서 누리는 여유는 찰나일 뿐이고, 내려가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생각 코드를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베이스캠프로 달려가 있어 그 곳까지 집중해 내려가는 데 온 정신을 모으죠. 그런데, 베이스캠프까지 시간은 왜 그토록 더디 흐르는지.”

떠날 날이 가까워 올수록 그는 괜한 자신감에 ‘업’(up) 되지 않으려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넌 당연히 성공할 거야”라고 더 흥분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가 찾아낸 방법은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기.

“내가 지금의 꿈에 가까이 다가가기까지 어떠했나 되짚어 생각해보곤 하죠. 지금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상 깊게 본 인수봉, 대학(수원대 전자계산학과) 시절 산악부에서의 경험, 1993년 미완으로 끝난 에베레스트 등정 때문에 가능한 거죠.

어릴 때부터 산에 가는 것이 생활의 일부분이었고, 산은 늙어 죽을 때까지 가는 곳이니 이걸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이런 생각을 놓지 않고 살아온 것이 바로 지금의 나죠.”

흔히 기사에서 말하듯 14좌 완등을 위해 결혼도 미뤘냐고 슬쩍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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