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 "아들 낳아야 진짜 내 며느리" 생각
"힘든 경제, 빡빡한 여성 일자리"에 고개 끄덕

만나는 사람마다 볼록해진 배를 보고 묻는다.

“아들이야? 딸이야?”

사실, 아직 손가락 하나 만져보지도 못한 뱃속 아이의 성별을 미리 알고 싶진 않았다. 출산 전까지 수많은 호기심 속에서 커다란 설렘을 즐겨보고 싶었는데, 합리적인 담당 주치의를 만난 덕분에(?) 일찌감치 그 소박한 꿈은 포기해야 했다.

한동안 ‘그것’은 나만의 비밀이었다. ‘그것’을 발설하는 순간, 감당해야 할 주변의 간섭이 두려웠던 탓이다. 하지만 순진한 남편은 친정과 시댁에 아기의 성별을 미주알고주알 고해바쳤고 예상했던 대로 ‘피곤한 입방아’에 시달리고 있다.

“애는 둘은 있어야 한다. 혼자는 외로워서 안 돼.”(친정엄마)

“딸이라고 하니 서운하더구나. 첫애가 아들이면 둘째는 부담이 없을 텐데.”(시어머니)

수박만한 배를 몸에 얹고 생활하는 이 생활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둘째에 대한 압력이라니! 은근히 배신감이 들고, 적잖은 슬픔도 밀려온다.

친정엄마는 결혼 전부터 “여자가 사회생활하고 자기 생활을 즐기려면 아이는 하나로 충분하다”며 “네 인생을 살 것”을 주문했던 여성이었기에 밀려오는 배신감은 더 컸다. 딸이라고 서운하다고 말하는 시어머니에겐 ‘황당한 죄인’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 딸인데 왜 어머니가 실망스러우신 거야?!”

언짢은 감정을 남편에게 한바탕 쏟아 부으며 앞으로 아이의 성별에 대한 양가의 간섭을 막아줄 것을 호소했다. 적어도 우린 한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농담처럼 하신 말씀을 가지고 마음에 뭘 담아두고 그래. 농담이신데!”

아뿔싸, 그는 내 남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남자였고, 한 집안의 외아들이었다.

10년 전에는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타고, 아들을 낳으면 자동차를 탄다’는 이야기가 유행했었고 최근에는 ‘장가간 아들이 여전히 자기 아들인 줄 착각하는 여자는 간 큰 시어머니’라는 우스갯소리도 돌고 있다. 때문에 정말 딸을 가진 부모가 큰소리치는 세상이 된 줄 알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도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각 대학 수석졸업, 사법시험, 외무고시 수석합격자가 여성이라는 뉴스가 놀랍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런 기대감이 허황된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여자는 시집가면 시집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하던 수백 년 전이나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 탄생한 지금이나 아들 타령은 여전하다. 칠거지악까진 들먹이긴 무리지만, 아들을 낳아야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강요와 집안의 대를 잇는 건 아들이라고 믿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적 유전자’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양가 부모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계 여성권한척도(GEM)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의 일자리부터 축소되는 이 마당에 정부는 저출산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아우성이니.”

아마도, 그래서 딸을 낳으면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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