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소토마요르 신임 대법관
‘아메리칸 드림’ 소토마요르 신임 대법관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09.08.14 11:47
  • 수정 2009-08-1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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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역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히스패닉계로선 ‘처음’
여성계 환영…“9명 대법관 중 여성이 4명 될 때까지 노력”

 

8일(미국 현지 시간) 외빈 6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소토마요르 신임 대법관의 취임식.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어머니 셀리나 소토마요르 여사의 손에 들린 성경책에 왼손을 올려놓고 오른손을 들어 공평무사한 판결을 내릴 것을 다짐하고 있다.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8일(미국 현지 시간) 외빈 6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소토마요르 신임 대법관의 취임식.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어머니 셀리나 소토마요르 여사의 손에 들린 성경책에 왼손을 올려놓고 오른손을 들어 공평무사한 판결을 내릴 것을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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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선 세 번째, 소수 인종 히스패닉계로선 처음인 대법관으로 주목받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가 8일(미국 현지 시간) 취임식을 갖고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이날 미 대법원 역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된 취임식에서 소토마요르는 가족과 각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 셀리나 소토마요르의 손에 들린 성경책에 왼손을 올려놓고 오른손을 들어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에게 모두 공평무사하게 판결하겠다”고 선서했다.

공화당 의원 40명 중 31명이 반대표를 던진 가운데 힘겹게 의회 인준에 성공한 소토마요르에 대해 전미여성기구(NOW)를 비롯한 미국의 여성운동계는 “미국에서 가장 빈번히 차별을 경험하는 비주류, 즉 여성이자 히스패닉계란 소토마요르의 개인적 경험이 대법원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고, 동시에 대법원이 평등과 정의란 대의명분을 향해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열렬한 환영을 표했다.

소토마요르는 그동안 소외계층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많이 내렸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소방대원 승진시험을 무효화한 것. 이는 백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험에서 소수 인종이 승진 요건에 해당하는 점수를 딴 사람이 없다는 데 따른 것이다. 또 이번 대법관 인준 의회청문회에서 “총명한 라틴계 여성이 백인 남성보다 더 나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발언으로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편 NOW는 이번 소토마요르의 대법관 임명을 계기로 대법원의 성평등한 구성을 재차 촉구했다. 1981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은퇴)가 여성 첫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 1993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이어서 이번 소토마요르 임명까지 포함해 대법원에서의 여성 비율은 갓 20%를 넘었을 뿐이라는 것.

또 긴즈버그에 이어 소토마요르가 대법관으로 임명되기까지 16년 이상이 소요된 데 반해, 같은 기간에 남성 대법관은 3명이 임명된 시간상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따라서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여성 대법관이 최소 4명에 이르기까지 여성운동계가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고 있다.

소토마요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푸에르토리코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던 부친은 초등학교 3학년이 학력의 전부로,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소토마요르가 9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간호사였던 모친은 뉴욕 빈민가에 살면서도 맹렬한 교육열로 소토마요르와 그의 남동생을 키워냈다. 모친의 헌신 덕분에 소토마요르는 소아당뇨와 가난을 딛고 프린스턴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최우등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예일대 로스쿨에선 학회지 편집장을 맡아 활약했다. 그는 로스쿨 졸업 후 뉴욕지방검찰청과 로펌에 재직하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는 등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삶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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