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문화제, 세대와 지역 아우르는 축제로 자라나다
고정희 문화제, 세대와 지역 아우르는 축제로 자라나다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전남 해남]
  • 승인 2009.06.12 10:47
  • 수정 2009-06-1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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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청소녀 지지세력 ‘고글리’가 문학캠프 이끌어
젊은 여성 문화작업자들 키워내는 통로로 자리매김

고 고정희 시인을 기리는 기행이 1991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8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 기행 외에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도 제정된 가운데 지난 6월 5일부터 7일까지 땅끝마을 해남 일대에서는 ‘제6회 고정희 청소년 문학캠프’가 열렸다. 고정희 기행에 늘 함께했던 본지는 3일간 진행된 문학캠프와 고정희 문화제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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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미황사에 모여

순결한 꿈을 적셔 글을 쓰고

바람은 청보리 밭을 훑고 해남 땅 끝까지

다시 온 세상으로

저 흔들리는 연두의 풀처럼

영원히 죽지 않은 고정희 시인의

희고 푸른 마음을 전한다

해마다 유월이면”

-김해 장정임과 김해여성회관 식구들이 보내는 추모의 글 중에서-

매년 6월초 해남에서 열리는 고정희 문화제는 고정희를 기리는 이들의 자매애를 넘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는 문화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해남군수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400여명의 참가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고정희 문화제의 시작은 1991년 세상을 뜬 시인의 기일을 전후하여 추모제를 열어온 또하나의 문화 동인들의 추모기행에서 비롯되었다.

박혜란 여성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조옥라 서강대 교수, 조형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으로 구성된 ‘고정희 친구’들은 매년 6월 시인을 만나러 땅끝마을 해남으로 향한다.

‘고정희 기행’은 해를 거듭하면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큰 진화를 이루었으며 참가자들도 서울, 해남뿐만 아니라 대구, 김해 등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무엇보다 또문 동인들의 뒤를 이어 ‘해남여성의소리’ 주축으로 ‘고정희기념사업회’가 시인 추모 사업을 맡아 지역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매년 시인 문화제와 심포지엄, 백일장 등의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 고정희 시인을 기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바로 시인이 세상을 떠난 즈음에 태어난 소녀들이다. 그동안 시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기행’으로 진행이 됐다면, 지난해부터는 고정희 문학제에 참여하는 청소녀들의 ‘문학캠프’ 성격을 띠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중심에는 ‘고글리’라는 1020세대로 구성된 문화 작업자 연대체가 있다.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을 만나 글도 쓰고 문화작업도 하는 마을(里)’이란 뜻의 ‘고글리’는 고정희 기행의 든든한 스태프 역할을 하고 있다. 문학상 본선에 참가한 후배들과 3일 동안 함께 먹고 함께 자며 다양한 주제로 토론도 하고 시도 읽는다. 아픈 사람이 없는지 참가자들을 꼼꼼히 살피고 문화제에서는 시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문화제 덕분에 한 번도 실제로 본 적도, 이야기도 해보지 않은 당신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와 내가 되었고, 나는 당신의 시를 읽으며 그대가 되었지요….”

-고글리 ‘제이’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글 중에서-

지난해 서울 시립청소년 직업체험기관인 하자센터에서 ‘창의적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가 고정희 기행에 참여한 후 고글리 활동을 시작한 보라(19) 양은 “각자 겪고 있던 혼란을 덜어낼 수 있어 우리는 서로를 ‘지지세력’ 혹은 ‘지지집단’이라고 부른다”며 “고글리를 통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연대를 통해 희망을 일궈내는 일을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고글리와 문학상을 기획하고 있는 김현아 작가는 “고글리는 이제 고정희 문학캠프를 기획·준비·진행하는 중심 주체가 되었다”며 “매주 만나 시도 읽고 여행도 가는 고글리를 보면서 문학제가 젊은 여성 문화작업자들을 키워내는 통로가 되길 바랐던 것이 이뤄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오고 있는 역사는 언제나 개벽세상이고/ 와 있는 역사는 언제나 남자세상이었으니/ 이제 평등하지 않은 것은 종래 버림 받겠지요.”

-고정희 ‘손이 여덟 개인 신의 아내와 나눈 대화-외경읽기’ 중에서-

위의 시처럼 고정희 시인은 일찍이 광장 표정을 만드는 소녀들,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젊은 여성들을 상상했다. 김현아 작가의 말대로 이제 정말 남은 건 ‘우주의 권력이 바뀌는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어떤 청소녀들이 새롭게 고정희 기행 및 문학캠프를 이끌어갈지, 내년도 변함없이 해남으로 향할 기행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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