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을 초월한 세타가야구 의원들 초당적 협력
풀뿌리 운동의 시작점 가나가와네트워크 운동
기초의원 중선거구제, 비례대표제 등 제도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입문했다. 반면 일본의 여성정치는 제도나 정치적 고려 등에 의한 성과가 아닌 20년 이상 척박한 환경을 조금씩 바꾸어 낸 성과였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이 곧 지역정치의 장이고, 그 속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 대리인으로 나서는 일상의 정치를 일본 세타가야구와 가나가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세타가야구에서는 도쿄생활자네트워크의 하세가와 전 세타가야구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COSFA(Cooperate Space for All)’가 가장 인상 깊었다. 친환경 도시락, 동화책 속 수프, 공방 등 다양한 지역 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2층 규모의 건물은 5년 전 한 주민이 지역 공헌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건물을 내놓은 것에서 출발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20년 이상 해온 나로서는 제일 부러운 일이었다. 주택가 골목의 자그마한 건물 하나가 지역 주민들에겐 여성 정치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보물창고인 듯했다. 10년 이상 수백 번의 회의를 거쳐 지역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진심과 정성이 지역 주민들에게도 결국 통했으리라.
구의회 소속 여성 의원 전원이 한 달 전부터 우리 여성 의원들의 방문을 준비한 오오타구의회도 잊을 수 없다. 전체 의원 50명 중 12명인 여성 의원은 소속도 다양해 공명당, 녹색당, 공산당, 무당파이고 연령대도 30대에서 60대로 이뤄져 있었다. 당을 초월해 참가한 우리 연수단만큼 이들도 당을 떠나 서로 일상적으로 협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성운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희망을, 지역정치, 풀뿌리운동’ 등 많은 문구들의 출발이 일본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에서부터 비롯됐음을 알고 있었다. 일본은 지역에서 생활자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기반 위에 여성정치를 실현해 나가고 있었다.
2005년 제정했다는 ‘NET’ 헌장을 보며 깊은 공감과 감동이 든 것은 내가 사는 울산과 비슷한 현실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기 중공업 지대로 개발되면서 녹지와 생활환경이 급격히 파괴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신주민’이 많고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이 사라졌다. 이후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업지대는 공동화됐고 지역재생은 가장 큰 정치과제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시민들이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3년 가와사키시 시의원 선거에서 첫 의원을 탄생시킨 것을 시작으로 지역당(로컬파티)인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1984년 설립됐다. 현재 30개 지역네트에서 3200명의 회원을 바탕으로 31명 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 정당이 아닌 지역당을 만든 것은 그들의 정치이념이었다. “우리는 중앙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해결하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뿐이지요.”
2억 엔에 달하는 네트 예산의 상당 부분은 소속 여성 의원들의 세비에서 나온다. 31명 의원들이 받는 세비 중 18만 엔을 제외한 나머지 수입과 수당은 모두 네트워크에 낸다고 했다. 일본의 물가로 보면 봉급이 아닌 수당 정도의 금액이다. 연수단과 동행한 도모코 요코하마시 의원의 경우도 지역의 보육원에서 급식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이 역시 네트의 중요한 토론거리라고 했다.
보다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의원 활동은 2차례 8년 동안만 할 수 있다. 정치스쿨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여성 후보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 지역당이 갖는 경쟁력의 한계와 새로운 세대로의 리더 교체 등이 네트의 과제로 거론됐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이 아쉬웠다.
내가 사는 울산 지역은 1인당 계모임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의 네트워크가 제일 발달된 도시라는 얘기다.
지역문제가 생겨 해결하려고 보면 너무나 많은 모임과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하는 게 너무 어렵다. 매번 각자가 해야 만족한다. 성과도 고스란히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바로 잘못된 정치로부터 출발되었으리라.
연수를 끝내면서 또 전국여성지방의원네트워크 워크숍을 통해 나눈 여성 지방의원들의 지역활동 사례를 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잇는 여성 정치인인가’ 스스로 되물어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