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인 1886년, 미국인 여행가이자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웰은 ‘조선-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을 펴내 서구에 조선을 소개했다.

로웰은 1883년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를 수행하며 통역 업무를 도왔다고 하는데, 그가 보고 느낀 조선의 모습을 한마디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표현한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우리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조선(朝鮮)의 한자 의미가 ‘고운 아침’이라는 뜻인 동시에, 우리나라가 그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라는 의미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렸다고 배웠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통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데, 지하철 속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 아줌마, 옆 사람은 상관없이 웃고 떠드는 학생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라는 안내방송까지 겹쳐 늘 시끄러운 아침을 경험한다.

여기에 ‘IT Korea’를 자랑하기 위해서인지 시내 곳곳에 대형 화면을 설치해 놓고 방송을 내보내는 통에 어느 모퉁이에서건 나의 눈과 귀는 혼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퇴근이 늦어지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는데, 십중팔구 운전기사분은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있다. 더 나아가 TV 방송을 틀어놓고 운전하는 분도 계시니, 뒷자리에 앉은 승객으로서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안전이 걱정되기도 하고 잠시라도 조용히 있고 싶어서 “기사님, TV 좀 꺼주시겠어요?”라고 요청하면, 마치 이상한 손님 다 보겠다는 듯 쳐다보곤 신경질적으로 확 꺼버리는 분도 있다. 버스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의 버스는 ‘달리는 라디오’ 그 자체니까.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분들은 십중팔구 대형 스피커를 동원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주변 사무실 업무에 방해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개업을 선전하는 가게 역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이크와 확성기를 사용해 손님을 유혹한다.

나는 가끔 소망한다. 고요한 대한민국을. 조용한 지하철, 조용한 버스, 조용한 택시, 조용한 거리를. 대도시의 상징인 자동차 소리를 제외한 다른 소음은 찾기 힘든 고요한 서울을.

너무 허황된 기대일까? 내 욕심만 앞세우려면, 내 의견을 관철시키려면, 나 혼자만 즐거우려면 큰 소리를 내야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를 기대한다면 말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