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제목도 섹시한 이 책의 구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에 흩날려와 알알이 박힌 모래알처럼 가슴속에 박힌다.

세상 어디에서든 사회적 투쟁은 단 한순간도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 땅바닥에 쓰러지면 돌멩이 하나라도 움켜쥐고 일어서야 한다는 말, 특히 부정형의 미래야말로 강렬히 열망하는 것이기에 지금 완벽히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와 있다는 작가의 말까지.

스물아홉에 파리로 떠나 문화정책을 공부하면서 서른 이후의 삶을 모험으로 만든 작가 목수정의 이야기는 관성에 젖은 채 살아온 내 20대 전부를 돌이켜보는 망원경 역할을 하는 데 충분했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내용이 남긴 여운은 강렬했다. 작가 목수정과 그의 연인인 프랑스 남자 ‘희완’은 혼인이 아닌 ‘시민연대계약’을 맺은 채 살고 있다.

그들의 딸 칼리까지 세 식구는 이 제도 덕분에 결혼한 사람들처럼 세금 감면이나 국적 취득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제도적 혜택을 동등하게 누리고 있다. 주례도 증인도 필요 없이 단 두 사람만의 합의에 기초하는 시민연대계약은, 파기할 때도 굳이 합의가 필요 없고 합의가 안 됐을 때도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가능하다. 결합할 때는 두 마음이 합쳐져야 하지만, 헤어지는 건 한 마음만 떠나도 성립한다는 현실을 잘 반영하는 제도다.

이뿐인가. 저자는 딸 칼리를 출산했을 때 프랑스 정부로부터 한화로 150만원에 이르는 출산 준비비용을 지급받았다. 프랑스에선 임산부들에게 임신, 출산과 무관한 영역에서도 처방전만 있으면 모든 약품을 무료로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임신하는 순간부터 출산을 하고 병원을 나설 때까지 모든 비용을 국가가 지불하는 것이다. 산후조리를 위해 물리치료를 받거나 피임시술을 하는 비용까지도 100% 국가 몫이다.

다양한 가족이 생겨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상 가족 혼인 지원정책만 펴고 있는 한국 사회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성들을 모두 ‘잠정적 가임 여성’으로 집단 규정 지어놓고 ‘지원금 줄 테니 애 낳아달라’라는 식의 출산정책만 펴고 있는 이 나라에서 여성들의 행복은 어디 있을까. 저자 말대로 행복은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며 전이되는 것인데, 여전히 이 나라는 불합리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고 답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다. 가슴에 불을 지른 이 책을 핑계 삼아 시민연대계약을 통해 충만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연인을 찾아 나서야겠다. 사랑보다 뜨거운, 자유를 창조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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