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독립운동가 국적회복 운동’ 산파 역할 40년
신채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 62명 국적 회복

 

이덕남 여사 /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이 ‘97년’ 만에 대한민국 호적을 갖게 됐다.

지난 3월 19일 새로운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돼 김규식(1882~1931, 북로군정서), 이정(1895~1943, 통의부), 김약봉(1891~1923, 서로군정서), 지운식(1893~1932, 독립군) 선생 등 모두 62명의 독립운동가가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법원 결정에 따라 유족들도 자신과 독립유공자의 관계를 공문서상에 등재할 수 있게 되는 등 비로소 독립운동가의 자손임을 떳떳하게 입증할 수 있게 됐다.

“얻어먹는 것은 똥보다 더 더러운데, 아버지 없는 홀아비 새끼라고 조롱받을 때는 그것 보다 더 더러웠다.”

이번 조치의 ‘산파’ 역할을 한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66) 여사의 가슴속에 박힌 남편의 이 한 마디는 40여 년간 투쟁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지난 1970년 초, 첫 아이 호적 등재를 위해 관공서를 찾은 그는 남편인 고 신수범씨가 호적에 ‘사생아’로 등록된 것을 보고 경악했다. 1912년 일제가 도입한 새로운 호적제 등재를 거부하며 ‘무국적자’의 길을 선택한 시아버지에 대해 정부는 광복 후 60년이 지나도록 생존자 위주의 옛 호적법을 내세워 이들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생아’의 아들이자,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던 독립운동가의 유족인 그네들의 삶은 무관심 속에 세월과 함께 잊혀졌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정작 국가로부터 외면 받은 채 무국적자로 떠돌게 된 이들은 약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풀기 위해 이 여사는 “다른 나라 역사에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국가가 보호해주고, 히딩크도 월드컵 4강 진출로 시민권을 얻었는데,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에게 호적도 안 만들어 주는 게 말이 되냐?”고 호소하며 고군분투했다.

힘겹게 선생의 발자취를 쫓으며 살아가는 동안 쌓인 말 못할 울분은 위암말기와 당뇨로 온 몸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겼지만, 오히려 이 여사는 열정을 다해 선생의 책 등을 찾아 보존 작업에 힘썼다. 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그간 국회에서도 여러 번 무국적 독립운동가 국적회복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 여사는 “생전에 일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다음 세대에 과업을 물려주기 위해 유언으로까지 준비하려 했다”고 담담히 회고했다. 그는 “호적이 마련돼 신채호 선생이 한국 국민으로 당당히 인정받아 명예가 회복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며 “도저히 넘지 못할 것만 같은 벽을 넘게 해준 시민들의 관심과 이를 알려준 언론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향후 신채호 선생 기념 사업회 활동을 적극 벌이고 싶다는 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역사와 그의 후손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국민과 정부에 보내는 마지막 바람이라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오는 4월 13일 임정 수립 90주년 기념식에서 무호적 상태로 숨진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적(가족관계등록부)을 새로 만들어 전달하고, 향후 후손 없는 무연고 독립유공자 200여 명에 대해서도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를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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