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위기가 여성의 보살핌 노동가치 살펴볼 수 있는 기회
실업과 가난 속에서도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대안적 성찰 필요

요즈음 TV 뉴스에서 날이면 날마다 보도되는 세계적 금융위기 소식의 배경화면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화폐 관련 영상물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이 영상물들은 미국달러화를, 한국 원화가 윤전기에서 찍혀 나와 그것이 규격대로 절단되는 모습을, 때로는 비닐 포장 속에 벽돌처럼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현금 다발을 담고 있다. 또 은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손에서 부채꼴로 세어지고 있는 화폐가 클로즈업되는 장면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 장면에 사로잡히게 될까? “저렇게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가고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없는 걸까?”라는 한탄일까, 아니면 “반 토막 난 내 투자가 10분의 1이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일까. 또는 “저렇게 많이 찍어내니까 거품이 만들어지는 거야!”와 같은 비판적 의식일까. 

돈을 찍어내고 돈다발이 등장하는 영상물을 보고있노라면 아름답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세계의 가장 뜨거운 시선이 집중되는 초점이 무엇인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상징 아닌 상징이다.

이 영상물들을 보며 왜 ‘아이러니’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아이러니라는 말보다는 기만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날 금융위기의 핵심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지폐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도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너무 불투명하고 복잡하게 얽힌 개인들과 구조가 만들어낸 총체적 문제라는 점을 지폐의 모습으로 단순화, 대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화폐는 교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했다. 조개껍데기, 구슬, 구리 동전 등 화폐의 역사에서 다종다양한 ‘물건’들이 그 기능을 해오던 오랜 시간 이후 상대적으로 가볍고 편리한 지폐가 등장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숭상하는 애덤 스미스 이후 고전주의 경제학의 전통을 왜곡, 전승시켜 온 신자유주의는 금본위제도는 폐지하고 신용카드와 플라스틱 머니를 개발했다. 한편, 사회구성원들은 관계의 윤리, 믿음, 책임감, 신용 등의 가치보다는 소유, 소비의 가치가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부추겨지면서 지구촌은 신용불량 국가, 신용불량 기업, 신용불량 개인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제 화폐는 교환의 수단이라는 본래의 도구적 기능을 벗어나 사물의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이며 목적이 되어 수많은 다른 수단을 거느리게 되었다.

개인 고리대금업자가 조직폭력과 결탁하듯이 멀쩡히 공적 기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금융권과 국가는 전쟁을 경제성장 프로그램의 일부로 만들어낸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단순한 금융의 위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책임지울 수 없는 사기극을 가능하게 하는 몬스터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인간 정신과 문화의 근간이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위기이다.

이 위기의 한가운데 실업과 가난, 불안과 혼란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근원적이고 진정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고유가 시대를 대체에너지 생산의 출발점으로 소망해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교환가치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생활세계, 생명의 영역을 우리 사고와 인식의 차원으로 다시 불러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여성들이 아무 대가 없이 수행해온 각종 식품 생산을 포함한 자가 생산 노동 및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다시 성찰하는 것은 유용하다. 일단 화폐 단위를 머릿속에서 접어놓고 생존을 위해 필수적 물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교환하는 방법을 새롭게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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