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지적장애인 이모양을 친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7년간 성폭행해 온 사건이 최근 알려져 충격을 안겨줬다.

이에 대해 청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오준근)는 지난 11월 20일 이들의 행위가 징역형에 해당하는 인권침해 범죄지만, “가해자들이 어려운 경제형편에도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워 왔고, 앞으로도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점 등을 참작하여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결국 성폭력의 가해자라도 ‘가족’인 이상 ‘가족에게 양육권과 친권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90년대 초반부터 우리 사회의 성폭력을 ‘범죄화’하는 법 제정에 기여해 온 여성인권 단체들은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 보호를 가족에게 맡길 수 없다”며 “사회적 보호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성년자에 대한 친족 성폭력은 치명적인 사회문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분석한 2007년도 상담 결과에 따르면, 전체 상담 건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성년자 성폭력 상담 사례는 총 656건이고, 이중 친족 성폭력 피해 건수는 232건으로 35.4%에 이른다. 즉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3~4명이 친족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율이 미국 여성들보다 높다고 발표한 여성부의 2007년도 ‘전국성폭력실태조사’가 사실이라면, 우리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03년 현재 18세 미만의 청소녀 세 명 중 한 명이, 그리고 청소년 여섯 명 중 한 명이 성폭력을 경험하고 이들 중 약 27%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라고 한다.

청주지법의 판결문에 나온 가족개념을 따른다면, 친족이 남자라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성적인 폭력을 가해 미성년자들의 정신과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도 ‘가족’이다. 또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상호신뢰능력’을 길러주지 못해도 경제적 후원의 울타리만 되어 준다면 가족인 것이다. 

한마디로 청주지법의 이번 판결은 미성년자 성폭력에 대한 정보 부족과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 부재에서 비롯된 근시안적인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법원에 기대하는 바는 가족 간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를 차별로 대하지 않는 보살핌의 가치를 가족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으로 세워주는 일이다. 그래야 양성평등 사회도, 민주주의도, 시장도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딱한 사정이나, 누군가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 친부모의 경제적 빈곤, 수감생활을 하기엔 너무 병들고 늙은 남성들의 도덕적 해이, 이 모두는 법원이 아니라 정부를 비롯한 학교, 민간단체, 종교단체, 매스컴 등 사회 전반이 책임을 공유해야 할 문제다.

법원이 나서서 자신들에게 운명을 맡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을 경시하면서까지 이 문제가 초래할 사회경제적 손실에 대한 장기적 비용 예측도 없이 그 책임 부담을 덜어주는 일은 그야말로 월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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