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껴준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나를 아껴준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12.05 11:37
  • 수정 2008-12-05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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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여든의 기억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지음/ 후마니타스/ 1만2000원)

600여 일간 함께 살며 나눈 이야기 책으로 옮겨
투사나 노동운동가 아닌 ‘어머니 이소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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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 아래층에는 ‘어머니 사랑방’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소선(80)씨가 거처하는 곳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글로 담아내며 ‘이야기 들으러 다니는 건달’을 자처해 온 오도엽씨는 어느 날 인사나 드리려고 사랑방을 들렀다가 나오면서 등 뒤에서 이소선이 던진 한마디에 걸음을 멈추고 만다. “이제 일이년이나 살겠어. 이게 마지막이지.”

이에 창신동에 그대로 눌러앉고만 그는 어머니 사랑방에서 600여 일 동안 어머니와 함께 먹고 자면서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면서 매일 밤 몰래 녹음기를 켜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질문 하나에도 어머니의 이야기는 몇 시간씩 이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이야기를 듣다가 졸기도 했다. “너 지금 자냐?” 깨우면 “아뇨” 하고 눈을 떴다가 잠드는 시간이 반복됐다.

이소선씨의 80세 삶을 정리한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이렇게 태어났다. 마흔 넘어 삶의 기둥이었던 큰 아들을 잃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역사의 대변자가 된다.

이후 38년 동안 180번이나 나라 법을 어기고 세 차례나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의 삶. 전태일의 분신 2주 만에 설립된 청계피복노동조합과 1985년 구로동맹파업, 서울노동운동연합,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등 모든 현장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특히 전태일의 분신 사건이 있었던 1970년 11월 13일의 이야기는 그의 구술을 육성 그대로 담아냈다.

“크게 대답하라 소리치면 피가 퍽 쏟아지고…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배가 고프다, 그 말을 들으니 기도 차지 않았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

이야기를 하다가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몇 번이나 말을 잊고 한참을 중단했다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해야 했던 그는 이 이야기를 한 후 나흘을 꼬박 앓았다고 한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는 그의 육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슴에 불이 일어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고 하루 세 주먹의 약을 먹으며 온몸을 파스로 도배한 날은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

그런 몸이지만 지금도 그의 전화기는 쉴 새가 없고 그도 방에 앉아만 있는 것을 힘들어 한다. 기륭전자 단식농성 현장에 찾아가 ‘그래도 살아서 싸워야 한다’며 단식하고 있는 노동자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설득하기도 하고 촛불집회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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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거리에 있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 협의회 사무실에 갈 때도 세 번 이상을 쉬어야 하는 그지만 자신을 지금도 찾아주는 곳들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마음만큼 함께 뛸 수 없음에 아파한다.

저자는 600여 일 동안 이소선씨 옆에 머물면서 투사나 노동운동가가 아닌 ‘어머니 이소선’을 본다. 자식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는 어머니인 그는 청계노조를 떠나고, 민주화운동에서 멀어진 아들의 옛 친구들도 “효도하던 자식이 불효한다고 내칠 수 있느냐”며 자신의 아들로 보듬어 안는다.

“나야 태일이 죽은 뒤에 미쳐서 지금까지 이러고 살지만 남들이 어떻게 나처럼 평생 미쳐서 살겠어. 하루든 몇 달이든 열심히 싸우고 살아온 게 어디야. 내겐 정말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이지. 난 누구도 원망하고 살지 않아.”

이소선씨는 아들이 살았을 적 밤마다 긴 대화를 나눴었다 한다. 그 버릇이 남아 있어 지금도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처음엔 녹음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이야기를 시작했던 그는 책으로 내겠다는 이야기에 반대했다가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이나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허락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낼 모레가 여든인데, 내가 못한 것도 있지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사람도 많은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나를 아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쓰려면 쓰라고 했지. 소설처럼 지어내지 말고. 아무튼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내 말은 이것뿐이야.”

저자는 글을 쓰면서 이소선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되어버려 글 쓰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노동운동의 대모’ ‘열사의 어머니’ 등 수식어에 의존하지 않고 이소선을 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애써 해석자가 될 필요 없이 기록자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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