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경제불황으로 사회에 대한 분노 폭발
피해자 모두 여성 충격적…중국 동포의 안타까운 사연도
사형제도 강화, 사회적 박탈자 지원 등 다양한 대안 제시

지난 20일 충격적인 뉴스가 올라왔다. 이날 오전 8시 15분쯤 한 30대 남성이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피해 나오는 투숙객들에게 무차별로 칼을 휘둘러 6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사망자 6명은 모두 인근 시장과 음식점에서 일을 해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터넷에는 최근 들어 더 빈번해진 ‘묻지 마 살인’에 대한 관련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묻지 마 살인은 지난 2월 광주에서 술김에 길가는 20대 여성을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을 비롯해 4월 강원도 산책로 여고생 살해사건, 7월 동해시청 여성 공무원 살해사건, 8월 서울 초등학교 앞 40대 남성 살해사건 등 올해만도 5건째다. 살인의 이유는 모두 ‘세상이 살기 싫어서’ 혹은 ‘누군가 죽이고 싶어서’로 비슷했다.

인터넷에서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보도가 쏟아졌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지방에서 홀로 상경, 비정규직을 전전한 사회적 외톨이로 4차원적인 공상과학 얘기를 자주 했고, 식탁의 물병과도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거나 탈모가 심해 평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니고, 여자도 거의 만나지 않는 등 주변 사람들의 말로 볼 때 외모 콤플렉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있었다.

23일에는 용의자의 일기장 발견 소식이 네티즌들을 놀라게 했다. 일기장에는 ‘조국은 나를 버렸다. 이젠 필사의 항쟁뿐이다. 내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무대포 정신, 악으로 깡으로’라거나 ‘지구의 멸망을 원한다. 신이 내게 두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난 복권 100억원 당첨보다 지구를 우주의 먼지로 폭파시켜 달라고 할 것’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난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써 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불쌍한 사람이다. 사회가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든 것이다’라거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인들을 흉악한 살인범이라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등의 동정론도 있었다. 또한 ‘비정규직이나 사회적 박탈자들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라거나 ‘인생 상담소를 늘려야 한다’는 등의 대안 제시도 있었다.

반면에 ‘이런 사람은 백 번 사형시켜야 한다’는 강경파도 다수였다. 한편으로는 유명무실해진 사형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글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런 끔찍한 범죄에 대해 처벌이 너무 가볍기 때문에 자꾸 재발되고 있다는 것. 용의자가 범행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죄송하다. 할 말 없다’고 답변했으나 죄책감은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자성론도 일었다. ‘그 사람을 욕하기 전에 자신은 어떠했는가 10초만이라도 반성해 보자.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는지.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 주었는지’라는 글을 볼 수 있었다. ‘힘이 들수록 절망하고 있는 가족은 없는지 가족을 한번 챙겨보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2006년 11월 14일 용의자가 적은 메모에는 ‘3층 이 XX년이 고시원이 안전하다고 마음 놓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 확실히 보여줘. 이 X을 죽여 버릴까… 한 명만 처단해도 그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사람들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못할 거 아닌가’라는 글이 있었다.

피해자들의 면면을 소개한 이야기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피해자 이월자(50·여)씨는 중국 헤이룽장 성에서 2년 전 건너와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홀로 지내던 인물. 함께 온 남편은 부산의 막노동판에서, 다섯 남매는 전국 각지로 흩어져 갖은 직업을 전전해 왔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계속되는 경제불황을 한 이유로 들었다. 경제 사슬의 하층에 있어 가장 큰 무게를 느끼는 젊은 일용직과 실직자들의 사회에 대한 반목과 분노가 비뚤어진 방향으로 폭발해버린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1년간 발생한 묻지 마 살인의 주요 용의자들은 대부분 30대의 실직자나 무직자가 많았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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