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덕수궁에서 열리는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콜롬비아 출신의 일명 ‘뚱뚱이 인물’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은 각별하다.

세상 모두가 날씬한 것이 아름답다며 온갖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일 때도 ‘뚱뚱한 것이 아름답다’며 풍요로움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드러내는 작가가 바로 ‘보테로’다.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보디라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나 환상을 깨고 낙천적인 정신 하나로 꿋꿋이 버티는 이 세상 모든 뚱뚱이들을 위한 찬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예술이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 싫어서’라고 했다.

사실 그의 여자들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살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고도비만으로 표현하고 있다. 건강상으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그런 과장된 모습이 남미인들의 특성과 잘 어울리면서 강렬한 열정과 함께 신선한 경험을 준다.(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그림은 족히 150kg은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바비 인형이 주는 판타지가 이제 우리 문화에도 완벽하게 자리잡아서 표준사이즈가 아닌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이나 불쾌함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패션이 결국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 패션의 주체는 우리의 몸이 아닌가! 그 다양한 몸에 대한 이해나 열린 시선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래에는 사람들의 부에 대한 척도가  자동차나 패션이 아니라 몸과 얼굴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우울하다. 44사이즈라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강박관념이 이제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미의 기준처럼 생각되고, 아름다움은 취향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공동의 설정처럼 모두가 획일화되는 시대, 어느덧 내 패션의 좌우명도 ‘내 살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가 돼버렸다.

이 우울함 속에 자연스럽다 못해 오히려 과장된 살집의 매력 속으로 우리를 흡인하는 보테로의 그림, 맑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상쾌하다.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