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광고하는 남자, 맥주 광고하는 여자
변화된 여성 자의식 공략하는 여성마케팅
여성 제품에는 여성 모델, 남성 제품에는 남성 모델이 나왔던 기존의 발상을 깨고 성의 경계를 초월해 모델이 서로 맞바꿔 등장하는 ‘크로스 오버’ 광고가 유행하고 있다. 양쪽 다 여성 소비자를 공략한 여성 마케팅의 일환으로 등장하게 된 것. 이는 요즘 소비계층의 핵심인 젊은 여성 및 주부들의 변화된 자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가 아닌 남편과, 혹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선 여성의 위치를 찾고자 하는 욕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를 가장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이 여성용 화장품과 주방용품 광고에 등장하고 있는 남성 모델들이다.
여성 화장품 광고는 대대로 여성들의 광고 선호 1순위인 분야였다. 여성 화장품 모델이 되는 것이 당대 가장 아름답고 인기 높은 연예인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원빈과 장동건을 기용해 신선한 충격을 줬던 미샤에 이어 더페이스샵의 권상우, 소망화장품의 현빈, 에뛰드하우스의 장근석 등 최근 여성 화장품 광고는 남성 모델들이 휩쓸고 있다.
변화는 화장품뿐만이 아니다. ‘주방은 여성의 영역’이란 관념을 깨고 조미료나 주방가전 등 주방용품 광고에도 남성 모델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남편이 주방에 드나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데다가 각종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요리하는 남성 연예인’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린나이의 음식물 처리기 ‘비움’ 광고에는 드라마 ‘식객’에서 천재 요리사 역할을 맡고 있는 김래원이 등장하고, ‘비타민’과 ‘우리 결혼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능숙하면서도 자상한 ‘요리남’의 모습을 보여준 알렉스는 ‘청정원 광고에서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출연해 손님에게 ‘자연숙성 진간장’으로 만든 연어 스테이크를 권한다.
청정원의 광고를 기획한 상암커뮤니케이션즈 김주철 국장은 “젊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인 만큼 요리하고 가정적인 남편상이 뜨고 있는 추세에 맞춰 이러한 이미지와 잘 부합하는 알렉스를 광고 모델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전에 장동건이 ‘정원아, 사랑해’라고 외치는 ‘건강한 프러포즈’ 편도 높은 광고 효과를 거둔 바 있다고 설명했다.
광고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광고 트렌드의 변화가 자신을 위해 요리해 주고 배려하는 남편을 원하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이상적인 남성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샘표가 간장 광고에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보인 이선균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에 남성적인 영역으로 알려졌던 스포츠 제품에는 여성 모델의 등장이 늘고 있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이신바예바를 출연시켜 이목을 끈 아디다스의 광고가 대표적. ‘강한 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남성’보다 오히려 여성들에게 호감을 안겨주었다는 평가다.
여성만을 위한 새 라인을 출시하고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배우 한예슬을 모델로 내세운 나이키와 리복은 또 다른 사례. 최근 레포츠를 즐기는 활동적인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여성 소비자의 수요층과 구매력을 높이 평가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그러나 최근엔 여성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을 강조하며 여성 주류 소비자들을 직접 공략하는 광고가 늘고 있다. 하이트 맥주는 대표적인 한류스타 보아를 내세워 ‘솔직한 맥주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고 OB맥주는 한예슬이 등장해 여성들의 입맛을 공략한 신제품의 상큼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광고의 성역 파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인식 변화가 광고 마케팅에 반영된 것이라 풀이한다. 김충현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광고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경제력이 커지면서 구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고 남녀 역할 분담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며 “요즘의 광고 트렌드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사회적으로 높아진 여성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