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
제5회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6.13 10:03
  • 수정 2008-06-1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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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소녀들 고정희 통해 페미니즘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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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은 2003년 6월 ‘고정희 문학기행’에 참여한 청소년들과 고정희 시인의 고향인 전남 해남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 ‘땅끝 소녀 백일장’에서 비롯됐다. 고정희 시인과 문학을 통해 만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페미니즘 정신을 심어주고자 개최된 것이다. 2004년부터는 강릉여성문화연대, 사단법인 김해여성복지회, 대구여성회, 제주여민회 등 지역 여성단체와 연계해 고정희 백일장을 전국단위 규모로 확대하고, 대상 수상자에게는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여하는 등 주요 청소년문학상으로서 위상을 높였다.

올해는 6월 6일부터 3일간 해남과 강진에서 진행된 ‘고정희 시인 추모기행’에서 본선대회가 이뤄졌다.

이에 앞서 예선대회는 지난 5월 10일 강릉, 김해, 대구, 대전, 해남, 서울에서 진행됐다. 매년 이 6개 지역에서 동시에 예선대회가 치러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의 청소년·청소녀들이 고정희 문학상에 참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또문’ 동인들의 새로운 과제다. 머지않아 고정희 문학관을 세우는 것 또한 이뤄내고 싶은 목표라고 귀띔했다. 올해 대표적인 수상작들을 만나보고 백일장 본선대회의 뜨거운 현장 속으로 들어가본다. 

[전남 해남·강진=채혜원 기자]




[대상 |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오빛나리 / 고양예술고 1학년
친구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에게는 매일 아침 같이 등교하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한 명은 피부가 까맣고 이국적으로 생겨서 별명이 ‘아프리카 시껌둥이’였던 남자 아이, 한 명은 피부가 하얗고 몸이 마르고 맹하게 생긴 데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여러 면에서 뒤처져서 별명이 ‘바보’였던 남자 아이. 그 아이들은 거의 혼자였지만 내가 매일 아침 그 아이들과 신나게 떠들며 학교에 등교한 이후부터는 자연스레 그 아이들은 아침에 날 기다리고, 나는 그 아이들을 챙기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실제로 나는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은 편이어서 그랬는지 항상 남에게 다가가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을 가릴 줄 몰랐다. 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세 가지였다. 첫째, 같은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둘째, 같은 반이기 때문에. 셋째, 서로 집이 가까워 같이 등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 세 가지 이유면 그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나의 다른 친구들은 내가 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같이 다니기 쪽팔리는 아이’였던 것이다. 자신의 친구가 그런 아이와 어울린다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이 너무나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등교하는 ‘시껌둥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었다. 시껌둥이는 그 소문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소문을 트집 잡아 놀리면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빨개지는 것이었다. 나는 소문을 수습하기 위해 아니라고 둘러대다가 그 아이의 빨개진 얼굴을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아프리카 시껌둥이 주제에!”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번에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고, 나는 그 순간 모든 감각세포들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곗바늘이 동동 굴러가고 현기증이 올 만큼 세상이 흐물흐물 돌아갔다. 내가 나 스스로 발등에 도끼를 내려 놓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다른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홧김에 한 말이든, 아니든, 나는 나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햇병아리들이 내 머리를 쪼아댔고, 나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나는 그 뒤로 ‘시껌둥이’ ‘바보’와 등교하지 않았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장난을 걸어와도 무시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바다 속 돌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어 다른 아이들과 하는 등교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차가운 계단에서 실내화를 신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내 등을 치면서 이름을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시껌둥이와 바보가 반가운 표정을 하면서 내 옆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경직된 표정으로 그 아이들의 인사를 무시하고 잔뜩 당황해서는 냅다 교실로 달려갔다. 달리고 또 달려서 그 아이들과 멀어지고, 또 멀어지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같은 반이 아닌데도 급하게 교실로 들어온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들의 인사를 무시했다. 왜? 그런 의문이 들자 어렸던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아냈고,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17살이 된 지금의 나는 어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고 친구 사귀기도 좋아하고 누구나에게 잘 다가간다. 그리고 역시 어렸을 때처럼 주변을 의식하고 ‘같이 다니기 쪽팔린 아이’의 기준을 세워두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나는 친구를 가리지 않아’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친구를 가리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미약하든, 사실 별 볼일 없는 작은 기준이든 뭐든 나는 나 스스로 그런 기준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가끔 길을 지나다 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이 남자건 여자건, 까맣건 하얗건, 그저 친구의 느낌으로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주춤한다. 그러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분명 그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더 똑똑해지고 키가 컸지만, 이런 면에서 나는 아직도 어렸다.

어렸을 때 내 머리를 쪼았던 햇병아리들이 이제는 닭이 되어서 내 머리를 쫀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친구를 가린다.




[여성신문상] 김은빈 / 부산서여고 3학년
두 마을을 짊어진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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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마늘 향기로 북적이던

경남 남해군 북구 상가리
키 큰 청년 하나가 도시로 향했다
한 마을을 어깨에 짊어진 그는

멀고 먼 여름 나라로 떠났다
하루 일을 마치면

모래 향기가 옷에 배는 나라
기름으로 물든 태양이

그의 온몸을 휘감는 나라
태양에 녹아내린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 다른 마을을 짊어졌다
그렇게

두 마을을 어깨에 짊어진 그는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나동그라졌다
부산 서구 동대신 3가 63번지

초록색 대문 앞,
구부정한 어깨엔 아직도

두 마을을 짊어진 채로

그는 지쳐 잠이 들었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여기서 잠들면 어떡해
그 소리에

키 작은 중년 남자가

부스스, 일어난다.

여전히, 그의 어깨엔

두 마을이 있다





[또하나의문화상] 곽제규 / 간디자유학교 3학년
촛불소년 이야기



 

1. 광화문으로 귀가하는 소년

6월 2일부터 8일까지 내가 다니는 간디자유학교는 인턴십과 대학탐방 기간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나는 탐방하기로 한 대학들이 모두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평소에 관심 있던 학과와 대학들을 살펴보러 다녔다. 일정을 마치고 밤이 되면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로 귀가했다. 낮엔 대학, 밤에는 집회, 그런 것이었다. 힘이 들면 시청 앞 잔디밭에서 잠깐 잤다 깨어나서 움직였다.

아직까진 왠지 잘 모르겠다. 전경버스 너머 국가 통치자에게 ‘100일 됐다 헤어지자’를 외치고 새벽 4시까지 남아 횡단보도를 왔다갔다 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삑사리 날 때까지 불러대는 이유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확실한 것은 내가 광화문으로 가는 것을 너무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3일, 4일, 5일은 규모나 호소력 이런 것들과 무관하게 나에겐 너무나도 보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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