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시작!!

옥수수·감자 심을 밭 빨리 일궈야 하는데 작년까지는 호미 한 자루 달랑 들고 덤벼들어 어떻게 겨우겨우 해냈지만, 올해는 옥수수 사전 예약 주문도 있고 작물도 좀더 다양하게 심어보려고 경작할 땅을 조금 늘리려 생각하고 있으니, 넓어진 밭을 호미 한 자루로 감당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관리기로 한번 갈아주고 밭고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당을 주고 하루 사람을 쓰려 해도 모두 자기 일 바쁜 철이라 그도 쉽지 않다.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는데 오늘 일찍, 아침 6시 반이나 되었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김씨 아저씨다.

“옥수수 심을 디… 갈아줄 테니까 거름 내놔….”

에고, 이리 고마울 데가…. 마음이 바빠졌다. 아저씨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우선 퇴비자루를 들어 날라야 한다. 한 부대 20㎏, 작년 이것 열 부대 들어 날라다 배밭에 거름 주고는 허리 삐끗해서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근 한달을 무지하게 고생했다. 그 고통이 기억나 가능한 한 허리 조심하려 애쓰지만 허리에 힘들어가지 않고는 안되는 일, 그래도 한 2년 해봤다고 작년보다는 요령이 생겨 할 만했다.

퇴비 열다섯 부대를 밭에 던져놓고 조금 모자란 듯하여 우리 누렁이 똥으로 만들어둔 퇴비도 한 100㎏ 퍼 날랐다. 그러니 한 400㎏을 뿌리고 삽으로 골고루 펴놓으니 탈탈탈탈, 김씨 아저씨가 마침 맞게 밭으로 들어오신다. 관리기 소리가 이리 아름다울 수가….

“아니, 웬 돌멩이가 이렇게 많아…. 매년 골라내는데도 매년 또 그만큼 나오네…. 정말 희한하다니까…. 시간 날 때 이 돌들로 탑을 한번 세워봐야겄어요.”

흙먼지 받아가며 긴긴 밭고랑을 오가는 아저씨를 가만히 서서 보기 민망하여 나는 관리기 돌아가기 좋게 굵은 돌들을 가려내며 아저씨를 쫓아다닌다. 그래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 김씨 아저씨는 일흔이 훨씬 넘으신 분이다. 바람에 꺾일 듯 가는 몸집에, 내가 보기에도 아저씨 근력이 작년 다르고 올 다르다.

사실은 아저씨에게 밭 좀 갈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었지만 작년부터는 아저씨네 밭 일도 힘들어하시는 걸 보았기에 말도 꺼내지 못했었다. 코너에서 다리를 뻗어 온몸 지탱하면서 힘겹게 관리기 돌릴 때는 어찌나 안쓰럽던지…. 한시간가량 김씨 아저씨가 애쓴 덕분에 밭은 정말 예쁘게 갈아졌다. 몇년 동안 화학비료 한번 안준 정말 깨끗한 흙…. 포실포실하니 어찌나 아름답던지….

“아저씨…. 커피 뜨거운 거 드릴까, 찬 것 드릴까?”

“뜨거운 거….”

김씨 내외분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도 부모님에 대한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아버지도 김씨를 좋아하시어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내외가 밭에서 일하면 아버지는 양 손에 커피를 타 들고 밭으로 내려가 ‘쉬었다 하라’며 건네곤 했다. 아저씨 내외는 이런 옛정을 그리워하며 아직까지도 아무 조건 없는 정을 베풀어주시니 늘 고마울 뿐이다.

“아저씨 아침 잡숫고 가세요.”

“아녀, 얼른 가서 밭에 거름 마저 내야 돼.”

탈탈탈탈…. 아저씨는 다시 일어나 관리기를 앞세우고 밭으로 내려가신다. 아저씨가 예쁘게 갈아놓은 밭고랑을 바라보니 올 한해 또 다시 이 땅에서 이루어질 기적들로 가슴이 설렌다. 아침 아홉시 반…. 일곱시부터 힘 좀 썼더니 배가 몹시 고프다.

“밥 값 했으니 아침이나 먹자.”

장화 속 흙 털고 돌아서는데 밭두덕 개불알풀이 방긋 웃어준다. 모든 것이 참 아름다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