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한국문학은 진화중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한국문학은 진화중
  • 김나령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2.29 11:05
  • 수정 2008-02-2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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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첩 봄호 특집 ‘한국문학에 나타난 가족과 성의 다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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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섹슈얼리티(성)’는 문학의 단골 소재다. 작품 속에 나타난 ‘가족과 성’은 급변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이자,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질긴 관습의 소산이기도 했다. 때문에 ‘다른’ 문학을 위해서는 가족과 성의 오랜 반복의 메커니즘을 고찰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에 발간된 ‘문학수첩’ 봄호 특집 ‘한국문학에 나타난 가족과 성의 다른 미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명호, 이재복, 정혜경, 김은하, 윤지영씨의 글을 통해 동성애, 대안가족 등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 시점에서 작가들이 가족과 성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 살폈다.    

#  90년대 여성작가들은 자발적으로 가족해체를 시도했다?

문학평론가 정혜경은 ‘가족서사의 재구성, 그 지난한 탈주’에서 90년대 가족의 해체에서 2000년대 가족의 재구성으로 이동해가는 흐름을 점검했다.

글에 따르면, 90년대 서하진, 김인숙, 은희경, 김형경, 전경린, 권지예 등의 여성작가들은 급격히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자발적인 가족 해체의 서사를 시도했다. 이는 타자를 억압하는 완경한 가족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여성의 욕망을 발견하는 서사로서 일종의 사회변혁 열망이었고, 그만큼 전복적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가출, 이혼, 불륜의 서사가 동어반복되며 남성에 대한 양극화된 이해를 낳았고, 집을 중심으로 한 이분법적 구도를 고착시키는 폐단을 낳기도 했다.

90년대 소설이 주로 가족 ‘해체’의 서사였다면, 2000년대 이후의 소설은 해체된 가족을 조심스럽게 ‘재구성’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소설들은 이른바 ‘정상가족’에서 벗어나 다양한 미래를 타진하고 있다”며 공지영, 박범신, 윤성희 소설을 예로 들었다.

#  싱글맘, 다문화가정, 대안공동체의 가능성

   

공지영의 최근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은 세번 결혼했다 세번 이혼한 엄마와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세 아이들이 꾸리는 가정이야기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서 이미 호주제 폐지를 알리는 서막 역할을 했으며, 딸이 싱글맘인 엄마의 가치관을 닮고 싶어 하는 모습을 통해 결손가정이라 불리는 모자가정이 즐거움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범신의 ‘나마스테’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네팔에서 온 ‘카밀’과 한국여자 신우의 사랑과 결혼, 죽음과 딸(코시안)의 성장을 통해 한국의 단일민족 국가 담론이 가난한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히 작용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윤성희의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혈연이 아닌 식구들, 대안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백수이거나 비정규직인 젊은이들이 모여 서로 아픔을 보듬으며 혈연관계를 배제한 일종의 식탁공동체를 이룬다. 정씨는 “‘가족’이 아버지의 기호를 통해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혈연관계를 의미한다면 ‘식구’는 권위의식 없이 함께 모여 앉아 음식을 매개로 서로를 위무하는 관계로 우연히 자발적으로 모였듯 언제든 쿨하게 작별할 수 있는 느슨한 관계”라고 평한다. 

윤성희의 소설이 후기근대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문학평론가 이명호가 기고한 ‘후기근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에도 나타난다. 이씨는 “망상, 환상, 냉소가 난무하는 시대에 윤성희 소설은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어머니 노릇’을 하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주거공동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  가부장제·이성애에 반기를 든 동성애 문학

가부장제와 이성애의 규범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의 욕망은 성적소수자들의 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은하는 ‘유령의 귀환, 퀴어적 상상력의 스펙트럼’에서 90년대 이전까지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게이와 레즈비언 등이 최근 부쩍 작품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퀴어(동성애)적 상상력을 통해 한국문학이 젠더 정체성의 안정성을 허물면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던 젠더 정체성의 범주와 그것의 내적 자질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광경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동성남자의 몸을 욕망하는 작품으로는 심윤경의 ‘나는 그를 사랑했다’,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백가흠의 ‘웰컴, 베이비!’ 등이 있다.

레즈비언의 경우는 90년대 이후 여성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주류를 형성한 30대 여성작가들은 성, 사랑,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주관심사로 채택했는데, 이들에게 레즈비어니즘은 가부장제의 억압성을 환기시키거나 여성적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후 소설은 실제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여성의 육체와 욕망을 담론화하거나, 가부장적 이성애 관계의 대안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권여선의 ‘나쁜 음자리표’, 천운영의 ‘세번째 유방’, 백가흠의 ‘사랑의 후방낙법’ 등이 좋은 예다.

문학평론가 윤지영도 ‘소란스런 밤의 장르, 퀴어적 상상력의 시들’에서 황병승 등 최근 시인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성애적 상상력의 양상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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