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리스 디리
와리스 디리
  • 오은경 / 동덕여대 터키문학 교수
  • 승인 2007.12.14 14:53
  • 수정 2007-12-14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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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조화로 폭력에 맞선 ‘사막의 꽃’
아프리카의 오래된 악습·만행 폭로
차별 없는 평등 리더십으로 삶 완성

 

지난 9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와리스 디리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와리스 디리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여년 전, 터키 유학 중이던 필자는 소말리아 출신 남학생으로부터 여성 할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성 할례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황소만큼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를 꿈꾸듯 깜박이던 귀엽고 앳된 남학생은 자기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순결을 유지하고 성욕을 절제하기 위해서 할례를 받는다며 ‘그들만의’ 미풍양속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왜인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남학생의 얼굴 위에는 어떤 이념도, 의도적인 폭력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그리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성들의 자부심과 명예 뒤에 숨겨진 여성들은 어떤 폭력과 고통을 감내해야 할까.

와리스 디리는 여성 할례를 알라의 축복으로 믿는 그 나라, 소말리아 출신의 여성이다. 그녀는 소말리아에서 낙타를 키우고 양을 돌보는 유목민으로 태어났다. 그 지방 관습에 따라 그녀는 어머니를 졸라 할례를 받았다. 낯선 집시 여인이 휘두르는 면도날에 몸을 맡기고 성기 한쪽이 잘려져 나갔을 때, 그녀는 비로소 온전한 여성이 되었다고 믿고 자랐다. 소변을 볼 때나 생리 중에 배를 움켜잡고 아무 말 없이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의 여성성이 온전하며 자연스러운 우주의 축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녀는 소말리아 사막을 건너 유럽 땅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유럽으로 흘러들어온 그녀는 자신이 획득한 여성성은 위선이며 자연이 부여한 여성성을 폭력적으로 훼손한 것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전통이, 어머니와 같은 고향의 전통이 그녀의 신체에 그토록 가혹하고 폭력적인 만행을 저질렀다는 충격은 그녀를 침묵 속에 가두고 만다. 몸 속에 드리워진 깊은 상처만큼이나 그 사실은 그녀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형벌이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을 깨고 그녀로 하여금 소말리아 전통의 폭력성을 폭로하도록 입을 열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소말리아의 가녀린 소녀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유엔 특별대사로 거듭나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그녀가 구현한 리더십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지 생각해보자.

1. 와리스의 리더십은 우주와 교감하는 리더십이다.

무엇보다도 소말리아 대자연이 안겨주었던 우주적 가르침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소말리아 사막에서 낙타의 젖을 빨고, 양을 지키기 위해 뜀박질을 하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소녀는 대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풍요로움이 무엇인지를 그곳에서 터득했다. 그녀에게 자연은 언제나 위대했으며 위계나 꾸밈과 이데올로기가 없었다. 그저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자연과 단절된 인위적인 삶이 아닌, 자연과 우주와 교감하는 인간이었다. 자연의 소리와 생명의 소중함을 그녀는 소말리아의 사막에서 배웠고, 실천했다.

2. 조화의 리더십이다.

그녀의 리더십은 근본적으로 소말리아 전통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애정에서 출발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의 분노 또한 소말리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먹고, 자고, 걷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든 생활방식에서 그녀는 소말리아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이나 미국 땅에서도 소말리아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소말리아의 위상과 함께 전쟁과 폭력에 점철돼 어쩌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는 소말리아를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녀가 소말리아의 모든 것을 뿌리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악습의 뿌리를 절단하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존재의 근원이라 믿었던 전통이 자신의 몸에 가한 행위가 가혹한 ‘폭력’이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 일었던 분노와 배신감의 회오리는 존재 자체를 뒤흔든다. 그 고통이야말로 그녀로 하여금 소말리아 전통의 폭력성을 온 세상에 공포하게 하였고, 그녀를 인권대사로 재탄생하게 한다. 그녀의 리더십은 미덕으로 고수할 전통과 서구문명을 결합시킬 줄 아는 조화로움 속에 빛을 발하게 된다.

3. 사랑의 리더십이다.

그녀로 하여금 할례를 여성의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해 인권대사로 거듭나도록 만든 근원적 힘은 그녀 안에 자리 잡은 ‘사랑’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세번째 리더십이다. 분노의 거센 파도 안에 그녀는 오래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할례를 받다가 감염되어 죽었던 자신의 언니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고, 소말리아 모든 여성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다.

소변을 보기 위해 10여분을 배를 웅크리고 앉아서 고통을 참아야 했던 시간들, 생리혈이 몸에서 응고되는 아픔과 통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만 알았던 어린 시절, 그 아픔을 견디기 위해 소말리아 사막에 땅을 파고 몸을 묻었던 기억들…, 이 모든 것은 혼자만이 겪었던 사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말리아 땅에서 할례를 받다가 죽어간 소녀들과 할례의 끔찍한 고통을 자연이 여성에게 부여한 ‘자연스러운’ 여성성으로 믿고 살아가는 소말리아 여성들을 사랑으로 일깨우고, 고통 속에서 꺼내주려 노력했다.

4. 평등의 리더십이다.

그녀의 네번째 리더십은 아버지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다. 소말리아에서 아버지는 군주이며 왕이었다. 그 엄명에 거역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매를 맞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여러번 매질을 당했다. 그녀의 어머니도 아버지와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는 주먹질을 당했다. 아버지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이 가지고 있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평등의 리더십이다. 그녀에게는 남성·여성, 백인·흑인, 어른·어린이, 서구문화·아프리카 전통 등에 대한 위계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뉴욕, 밀라노, 런던 등에서 활동하는 검은 피부의 슈퍼모델로서 그녀는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이나 열등감 따위는 갖지 않았다. 그녀에게 모든 사람은 피부, 인종, 나이, 성별을 초월한 평등한 존재였으므로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서 온전하고 당당했다.

‘와리스’란 이름은 사막의 꽃이란 뜻이다. 거칠고 황량한 사막 속에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 지니는 생명력은 귀하다 못해 안쓰럽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와리스 디리가 소말리아 사막을 떠나 세상을 바꾸는 여성리더로 변모하기까지 그녀가 보여준 우주적 힘과 생명력에 무한한 경외심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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