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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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복희 / 한국항공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07.12.14 14:44
  • 수정 2007-12-14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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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전통유교 뒤섞여 ‘독특한 차별’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평양 여성들이 지난 10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남측 관계자들을 태운 버스를 향해 꽃술을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평양 여성들이 지난 10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남측 관계자들을 태운 버스를 향해 꽃술을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단절된 사회

여성의 지위




우리는 북한의 주민도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그동안 북한 주민들과 너무나 다른 환경에 살면서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북한 사회와 주민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느낀다.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이 북한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지식은 매우 빈약하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정보를 북한에 대한 정보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여성정책과 여성의 지위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삶의 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나아가 남북한간에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북한의 여성정책은 다른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과 같이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시즘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엥겔스, 베벨과 같은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은 여성문제, 즉 여성에 대한 차별, 억압, 불평등은 사유재산제가 폐지되고, 여성을 사회적 생산활동에 편입시키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적 생산활동의 편입을 여성 해방을 위한 핵심으로 여기고, 여성이 노동과정에 완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의 사회화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북한에서 이러한 사회주의 이론적 기반은 북한 정권의 정치적 변화와 함께 한국의 전통적 유교 가부장제와 모순되게 혼합되면서 독특한 여성정책으로 변화된다. 

80년대부터 가부장적 이념 강조

북한 여성정책의 특징을 시기별로 구분해보면, 북한 정권의 수립부터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1959년 초까지는 기존의 봉건적 가부장제 가족제도를 철폐하고 여성의 사회적 노동력을 유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래서 호적법과 상속제도, 장자 우대제도 등이 폐지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6개월 이상 된 임산부의 경노동 전환과 임산부의 야간노동 금지, 산전 35일·산후 42일 유급휴가(93년 산전 60일·산후 90일 총 150일로 변화), 임신 6개월 이후 산전휴가에 이르는 기간 중에 중노동 금지 등의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60년대와 70년대의 여성정책은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여성노동력의 사회적 동원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여성의 혁명화,’ ‘여성의 노동계급화’라는 구호 아래 탁아소나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같은 보다 구체화된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하였다.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탁아소, 보육원의 설립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탁아소, 보육원의 현황은 95년 현재 2만7000여개로 구소련보다 월등하게 구축되어 있었다고 한다. 북한은 80년대 말 이후 겪게 된 식량난에도 불구, 이곳에 대한 식량 배급만은 그대로 유지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이 탁아소나 보육원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여성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사회주의적 집단생활의 규범을 내면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사회화를 위한 정책적 의도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가사노동의 서비스 산업화’를 추진해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직접 집에서 만들었던 된장, 간장, 김치 등을 포함한 주요 식료품 및 기호품을 대량생산하였고 상점, 병원, 세탁소, 이발소 등 사회봉사시설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하게 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80년대부터 북한의 여성정책은 전통적 가치관과 혈연관계에 기초한 가부장적 이념이 강조되면서 초기 사회주의적 여성정책이 후퇴하였다. 북한 정권은 ‘가정의 대는 혁명의 대’라고 하며 혈연적 유대관계와 효를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구축하려고 시도하였다. 이것에는 김정일주의와 김정일의 부자 세습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특히 90년 제정된 가족법의 내용은 전통적 가족제도의 유산을 대거 회복하고 어머니의 일차적 역할로서 자녀의 양육과 교양을 강조하면서 친족 부양의 범위를 확대해 국가 부양의 범위를 축소하고 가족을 통해 사회복지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북한 사회에서 젠더화된 성역할과 노동분담 및  가부장적 사회문화는 더욱 강화되었고, 여성들은 일과 가정에서 모두 승리해야만 하는 이중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즉 여성들은 한편으로 혁명화되고 노동계급화되어 혁명적 노동전사가 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과 자녀 양육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알뜰한 주부이며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북한 여성의 노동계급화 정책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증가시켰다. 북한의 여성노동력은 60년대 하반기 이후 남한을 앞지르고 있고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아주 비약적으로 증가해 북한 노동력의 절반 이상의 역할을 담당한다. UNDP의 자료에 의하면 92년 여성노동력은 북한 전체 노동력의 46%에 해당된다.(북한 사회의 폐쇄성 때문에 공식적인 최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여성 노동계급화 정책 더 강화

북한 여성의 취업률은 혼인 여부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미혼여성의 90%는 사무원, 농민, 노동자 등의 공식 직업노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혼여성들은 30%만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은 80년대 이후 경제가 심각한 침체국면에 접어들자 노동력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여성의 노동력 유입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게 되었고, 기혼여성이 퇴직해 ‘가두녀성’(부양가족으로 가정에 잔류하는 여성)으로 있는 것을 허용하였다.

주부들은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가내작업반 노동과 같은 시간제 노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가내작업반은 각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내에 조직돼 있다. 가내작업반은 생필품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추진되었는데 부산물이나 폐설물 등을 이용해 식료품, 옷감, 일용잡화, 공예품, 가구류, 전기제품 등의 소위 ‘8·3 인민 소비품’을 만들어낸다. 시간제 노동은 연금에 포함되지 않고 안정된 소득도 없으며 자기 성취율이 낮아도, 기혼여성들은 유동적인 노동시간 때문에 가내작업반을 선호해왔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이렇게 높지만 남녀의 고용형태는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나 분리되어 있고,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실질적으로 남성보다 낮다. 여성들은 소위 ‘여성적인’ 성특화된 직업에 집중되어 있다. 북한은 1958년 내각 결정 제84호 ‘인민경제 각 부문에 여성들을 더욱 인입시킬 데 대하여’를 공포해 교육 및 보건부문에서는 여성노동력의 비율을 평균 60% 이상, 기타에서는 평균 30% 이상으로 제고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그래서 여성들을 ‘개별적 특성에 맞도록’, ‘헐하고 쉬운 일’인 사무 보는 일이나 경노동 부문에 배치하고, 남성들은 광산, 임업, 제철, 제강 및 화학부문의 기본작업, 농업부문 등의 ‘중요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선차적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95년 제4차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북한의 윤기정 재정부장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직업별 여성 분포는 95년의 경우 상업·유통부문에 73%, 편의 봉사원의 76%, 교육 요원의 56%, 보건부문의 65%가 여성취업자라고 밝혔다. 여성들은 일부 여성화된 직종, 즉 판매원, 교원, 편의 봉사원, 보건분야 등에 편중되고 있고, 특히 탁아소나 유치원의 교양원, 간호원, 미용사, 방직공장 노동자는 100% 여성이다. 여성들은 또한 농업종사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중공업화 전략에 따라서 남성노동자들이 공장으로 재배치되고 여성들이 협동농장에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여성의 사회적 참여 확대를 위한 북한의 조처가 성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성별 분업의 강화를 초래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전문직·기술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89년 현재 50만명으로 135만명의 전문가·기술자 중 37%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63년 여성전문가·기술자의 비율이 전체의 14.6%인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그 이유는 북한 당국이 ‘전 인민의 인텔리화’를 추진해 공장대학, 농장대학, 공장고등전문학교, 농장고등전문하교, 야간 및 통신교육 등 근로자들이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근로자들이 이러한 교육기관을 통해 직업에 필요한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임금을 살펴보면 원칙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어 임금에서 성적 차별은 없다. 그러나 북한은 노동의 경중에 따라 임금을 차별적으로 책정하는데,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노동이 힘든 직종에 배치되어 있는 데 비해 여성들은 경노동분야에 집중돼 있고, 기능적으로도 여성들은 남성보다 낮은 직급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여성의 소득은 남성보다 적다. UNDP는 92년 총 여성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38.7%라고 추정했다. 또한 북한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 평균임금의 84%라고 밝혔다.

 

사회활동 늘어도 페미니즘과 무관

북한의 여성 노동계급화 정책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증가시켰는데, 북한 여성들은 사회적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적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이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국가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전통적 가부장적 여성 역할의 요구를 부당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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