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학벌이 왜 필요한가 연극계에서 진정한 '최고'들은 의외로 가방끈이 짧다"

학벌 위조 파문으로 연극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김옥랑과 윤석화의 추락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김옥랑이 흔들리면 대학로에서 가장 중요한 극장 중 하나인 동숭아트센터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큰 손'을 지닌 제작자가 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윤석화가 돌아오지 않으면 우선 예술전문잡지인 '객석'의 발간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설치극장 정미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지난 연말 '객석'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잡지를 지켜나가는 고충 때문에 눈물짓던 윤석화가 떠오른다. 그녀는 또 두 아이를 입양하면서 연극이 아닌 다른 차원의 감동을 주기도 했었다.

이처럼 큰 무게감을 지닌 인물들이 왜 학벌을 위조해야 했을까? 아마 그녀들은 그런 위치에 가기 위해, 그런 큰 사업들을 위해 소위 '명문대 출신'의 학벌이 필요했다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렵게 걸어간 길을 '쉽게' 넘어가려는 편법에 불과했으며,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명백한 '거짓'이었다.

연극계에서 진정한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들은 의외로 가방끈이 짧다. 우리 시대 최고의 연출가 중 한사람인 이윤택의 공식 학력은 방송통신대학 중퇴다. 현재 차세대 연출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박근형은 최근에야 학사학위를 받았다. 가장 강력하게 떠오르는 인물은 극작가 이강백이다. 그의 공식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지만 그는 우리 연극계에서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이고, 현직 대학교수다. 더구나 그의 부인은 시인이고 박사고 교수인 김혜순이다. 엄청난 학벌 차이를 뛰어넘은 그들의 사랑에 대해 난 늘 엄청난 존경심을 품어왔다.

진정한 '최고'들은 학벌을 위조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히 드러낸다. 박사이고 교수인 나는 그들 앞에서 늘 주눅이 든다. "너는 박사라면서 그 정도밖에 못하니?"라는 핀잔을 듣는 것처럼. 학문의 깊이로 승부하는 세계도 아닌데 왜 예술가들에게 명문 학벌이 필요한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예술 그 자체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과 콤플렉스가 빚어낸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신정아와 김옥랑이 대학 강의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강의의 주요 테마로 삼았다는 공통점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최고의 '지성'을 자부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몰라서 한순간에 몰락했던 외디푸스의 신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가. 나 자신을 속이고 남들을 속이면서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술의 최고 목표이자 최고 가치는 '진실'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문예창작학과'에서는 최근에 강사의 학위 문제로 회의를 가졌다. 학과 교수들은 문학과 예술을 가르치는 자격에 있어 학벌의 높고 낮음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예술창작 교육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풍부한 예술적 성취와 경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다.

김옥랑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서 배제되었던 성균관대 정진수 교수의 지적처럼 학벌을 위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 쉽게 학벌을 만들어주는 학계의 풍토도 문제다. 쥐꼬리만한 강사료로 버티며 어렵게 학위 논문을 쓰는 젊은 학자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저명인사나 연예인의 학위 논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심사과정을 적용하고 있다. 유명인사가 어느 대학에서 어떤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 대학 홍보에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학술진흥재단에는 자신의 학위 등록을 취소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단다. 갑자기 나 자신에게 반문해본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나 다름없는 박사논문 심사에서 비겁하게 침묵한 적은 없는지, 너무 쉽게 가짜 같은 논문을 써낸 일은 없는지, 학생들 앞에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연기'한 적은 없는지…. 줄줄이 가짜로 판명되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자신의 양심을 향해 힘껏 돌을 던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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