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호주제 폐지·의정서 비준 긍정평가속
최종 권고문의 한국정부 이행이 더욱 절실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달 31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는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 정부 대표단 10여명이 하루 종일 진땀을 흘렸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여성연합과 민변의 여성 NGO 대표들은 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한국 심의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궁금증을 참아가면서 바로 옆 회의장에서 헝가리 정부를 상대로 질문을 했다. 바로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시도'라고 발음) 이야기다.

이번에 한국이 실로 9년 만에 유엔에서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보고서 심의를 받았다. 1998년의 지난 심의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여성차별을 없애고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점검하기 위한 심의였다. CEDAW 위원으로서 당연히 심의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나 자신은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있지 못했다. 위원회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동시에 심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의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당사국의 위원은 발언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여성 관련 법과 정책도 많이 변화했고, 따라서 협약 적용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유보조항(16조 1항 중 4개 항목)도 성씨와 관련한 조항만 빼고는 다 철회되었다. 16조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조항이기 때문에 특히 여성의 평등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조항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협약 비준시 16조 전체를 유보하는 경우도 많다. 유보조항의 문제는 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중 하나다. 유보를 걸어놓으면 당연히 그 조항은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이 호주제도 폐지하고, 또 유보조항을 성씨 문제 하나만 남기고 다 철회한 것은 당연히 긍정적 평가를 받았고, 특히 협약에 딸린 선택의정서를 작년에 비준한 것은 큰 환영을 받았다. 

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 중에 성주류화 정책과 성인지 예산 도입, 여성채용목표제 같은 것은 한국이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 중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 남녀간의 높은 임금격차, 낮은 여성 정치참여 비율, 일과 가정의 양립문제, 또 최근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는 이주여성의 인권문제, 군가산점제 부활 움직임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이번 심의를 받기 위해 정부 대표단과 NGO 모두 열심히 준비를 했다. 정부쪽은 각 부처 참가자가 모여 4시간에 걸친 준비회의를 하고 예상문제와 답변을 뽑았다. NGO도 9개 단체가 협력해서 대체보고서를 냈을 뿐만 아니라, 뉴욕에 도착한 후 위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개최하고 로비활동을 정말 열심히 펼쳤다.

현재의 문제점들은 CEDAW 위원회의 최종 권고문에 반영될 것이다. 위원회는 8일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권고문을 채택한다. 이후 권고문은 6개 유엔 공용어로 번역되고, 1~2주 내에 한국 외교부를 통해 여성가족부에 전달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유엔에서 심의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의지다.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권고문을 이행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권고문 따로, 국내에서의 행동 따로라면 유엔과 한국 정부, NGO 모두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최종 권고문의 국내 이행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우선 여성가족부가 공개포럼을 준비하는 일이다. 심의에 대한 보고와 함께 최종 권고문을 어떻게 잘 이행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 후부터는 정부 각 부처가 권고문의 내용을 차근차근 이행해나가고, 또 한편으로 NGO는 정부가 잘 하도록 감시와 비판의 채찍질을 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몇년 후에 다시 심의를 받을 때는 성평등이 훨씬 더 진전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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