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땐 변기도 떼가고 음식도 나눠먹지 않아
융통성이 안통해 답답

 

오래된 건축양식의 파리시내 한 아파트cialis manufacturer coupon open cialis online co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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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과 퐁네프 사이의 센 강변인 파리 시내 중심지에서 살다가 3년 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모든 파리지앵들이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하는 환상적인 동네에 살았기는 해도 1년 내내 햇볕도 들지 않는 15㎡ 면적의 비좁은 스튜디오에서 3년 반이나 구겨진 상태로 살았던 기억은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긴 했어도 거실과 방, 부엌, 목욕탕이 따로 있는 56㎡나 되는 일광 잘 드는 커다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의 행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방에서 부엌, 다시 부엌에서 거실로 뛰어다니며 신나게 짐정리를 시작했다.

옷을 정리하려고 현관 복도에 있는 붙박이 장문을 여니까 웬걸, 이전에 살던 여자가 옷장 선반을 가져가버렸다.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나무선반을 짜맞춰온 후에야 옷을 정리할 수 있었다. 분명히 이사 오기 전에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선반이 있었다.

이전 여자는 거실에 커튼을 걸 수 있게 된 고리마저 떼어가버렸다. 우리 거실의 창문 사이즈에 맞게 설치되어진 고리를 새로 이사 가는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지, 씁쓰레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화장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화장실 위에 걸쳐놓았던 변기까지 떼어가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자기가 사서 설치한 것이라 해도 이렇게 철저하게 챙겨갈 수 있는 건지, 놀랍다 못해 기가 막혔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나만이 당하는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이사를 하다보면 흔히 부닥치는 현상이다. 이들은 자기 것은 죽어도 남에게 거저 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생을 사는지도 모른다. 이사 갈 때 전등뿐 아니라 전등알도 다 떼어가야 성이 차는 사람들. 새로 이사 가는 집에서 그 전등의 사용가치가 없어도 막무가내로 떼어간다.

10년 전에 우리 부부가 알프스 지방에 조그마한 스튜디오를 하나 샀을 때 일이다. 복덕방을 통해 산 집에 마지막 잔금을 치르기로 한 날. 다른 지방에 멀리 살았던 우리는 그 전날 알프스에 도착했는데 그날 밤을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그때까지도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많이 지니고 있던 나는 한국에서처럼 복덕방에 가서 열쇠를 하루 먼저 얻어 우리가 살 스튜디오에서 자고 싶어 했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 여기선 그런 식의 융통성이 통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호텔방에서 한탄을 했다. 다음날이면 우리 것이 될 스튜디오를 코앞에 두고 이렇게 처량하게 호텔방 신세를 져야만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텔비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라면 당연히 통할 융통성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사회에서 마치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 것은 죽어도 챙기는 이들에게 한번 더 혀를 내둘러야 할 일이 생겼다. 며칠 전 일이다. 자기 집이 좁은 관계로 제철이 아닌 옷을 우리 집 지하창고에 보관하는 프랑스 친구가 있었다. 날이 갑자기 더워졌다며 이 친구가 여름옷을 찾으러 왔다. 지하창고에 내려가보니 자물쇠가 걸려 있던 고리 중 하나가 떨어져나가고 없어, 문을 밀어보니 그냥 문이 열렸다. 누가 이런 장난을 한 것인지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없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음날 수위 아줌마에게 지하에 가끔 도둑이 들어오느냐고 물으니, 도둑은 아닌데 가끔 누군가가 들어와 자물쇠 등에 손을 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전에 살던 여자에게도 같은 일이 발생해 이 여자가 손수 창고 문에 구멍을 뚫어 새로운 걸림쇠를 채워 사용했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이 프랑스 아줌마가 이사 갈 때 그것마저 떼어가버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자세히 살펴보니 창고 문 위에 과연 구멍 하나가 뻥 뚫려 있는 게 보였다. 벌어진 내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세상에 창고 걸림쇠까지 떼어가다니. 해도 너무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사람을 불러 새로운 걸림쇠를 하나 만들었다. 비용문제를 떠나서 이 사람들의 삭막하게 사는 방식에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 서늘하게 내려앉은 가슴 위에 남편의 사과가 올라왔다. 처음에 남편이 디저트로 사과 한개를 깎아 먹을 때 나도 먹고 싶은 생각이 나서 한쪽만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태연히 싫다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어이가 없어 멍하니 남편을 바라보고 있자니 왜 사과 많은데 하나 깎아 먹지 않고 자기 것을 달라고 하느냐며 오히려 본인이 더 시큰둥해 했다. 남편이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외아들로 곱게 자라 남에게 뭘 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지 처음에는 아리송했으나 이후에 다른 프랑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남편의 입장 쪽에 가깝다는 걸 알게되었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 뭐든 나눠 먹어야 했던 한국인과는 달리 비교적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라 나눠 먹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다시는 남편에게 사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가 사과 하나 깎아 먹을 때마다 어렸을 때 오빠나 동생에게 권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한쪽 줄까 하고 물어보자 이 남편은 또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싫다는 의사표시를 냉정하게 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정말 프랑스라는 이국땅에서 살고 있구나 절감하게 된다. 네 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네 것인 한국 사회에서 살다가 이렇게 내 것은 죽을 때까지 내 것이고, 네 것은 영원히 네 것이 되는 프랑스 사회로 옮겨왔다는 사실이 서글프다고나 할까. 두 사회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한 다리가 길면 다른 다리가 짧을 수밖에 없다는 우리 속담이 정말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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