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숙씨가 참으로 부럽소. 세상을 온통 분홍색으로 그려놓았으니까. 그렇게도 세상이 아름다운가, 살 만한가 하고 묻고 싶소. 그러자니 조금 부끄러워졌소. 이 부끄러움이 부러움으로 변하기를 내게 가르쳐주오.”

지난해에 낸 첫 산문집을 스승님께 보내드렸더니 얼마 후 보내주신 짧은 편지의 한 구절이다. 나는 그 편지를 가끔 꺼내 본다. 대학 4학년 때 김윤식 선생님의 근대문학비평 전공과목을 들었을 뿐이지만 여태껏 이어져오는 인연에 참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저 독백하듯이 강의를 하셨고 학생들한테는 눈을 맞추지 않으셨다. 그 당시 30대의 젊은 교수였지만 차갑고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던 분이셨다.

나에게 어찌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평생 100권도 넘는 저서를 쓰신 분이 나이 50이 넘어 겨우 책 한권을 낸 모자라고 게으른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는  책 속에 우리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시며 <비평가의 사계>라는 최근 저서를 손수 보내주셨다. 작년에 보내주신 편지와 같은 문체인 그 책을 아껴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책이란 무엇인가. 종이에 검은 물감이 찍혀 있는 물건. 이는 인터넷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오. 검색하고 인용하며 필요한 부분만을 읽는 것이 인터넷이며, 따라서 그 문장이란 투명하기 짝이 없는 정보인 까닭. 책은 그렇지 않소.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 없이 한꺼번에 읽기가 책의 본질이지요. 그것이 정신의 영역인 까닭이오. 그러기에 불투명할 수밖에요. 중요한 것은 이 불투명함에서 옵니다. 근본적인 물음에 정신이 관여하기 때문.”

학문이 부족하여 모든 글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손상된 정신을 치유하는 약처럼 읽어졌다. 세상이 까닭을 알 수 없이 짜증스럽고 의미 없이 느껴지는 날도 불투명한 인문학의 세계가 있다는 것, 그곳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수필가 호원숙씨의 칼럼 ‘작은책상’이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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