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 뚜렷한‘소통령’
역대 영부인중 가장 고학력·고령
젠더 이슈 직접 제기하고 움직여

 

대통령 퇴임 후 안착한 DJ 동교동 자택에 예나 다름없이 나란히 붙어있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문패. ‘이희호 없는 김대중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생 민주화를 향한 역경을 함께 해온 ‘동지’의 표시이자 ‘평등부부’의 상징적 증거다.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대통령 퇴임 후 안착한 DJ 동교동 자택에 예나 다름없이 나란히 붙어있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문패. ‘이희호 없는 김대중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생 민주화를 향한 역경을 함께 해온 ‘동지’의 표시이자 ‘평등부부’의 상징적 증거다.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필자가 지난해 겨울에 한국정책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희호 여사는 단임 임기를 보냈던 1980년 이후 영부인들 중 가장 훌륭한 영부인으로 꼽혔다. 유형별 분류에서 이 여사는 ‘뚜렷한 업적형“ 영부인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이 여사는 젠더 이슈를 직접 제기하고, 그것을 움직여나간 첫 영부인으로 꼽힌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여성운동가 출신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 관련 이슈들이 쉽게 풀렸다.

이 여사는 대통령 영부인의 정례적인 단독 해외순방 영역을 개척한 첫 영부인이기도 하다. 비록 전임 손명순 여사가 단독으로 베이징 여성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지만 1회에 그쳤다. 반면 이 여사는 단독의 정례적인 해외순방 외교활동을 벌였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 부인 로잘린 여사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해외순방을 한 것과 유사하다.

이 여사는 또 역대 영부인 중 가장 고학력의 대통령 영부인이다. 이화여전에다 서울대, 그리고 미국 스칼렛대 석사 출신의 유학파로 영어가 능통하다. 고교 졸업 후 고학을 했던 남편과 대조적인 학력이다. 이 여사는 퇴임 후에도 재임 중 만들었던 영부인 사업인 ‘사랑의 친구들’과 ‘한국여성재단’의 명예총재와 명예고문 등 다양한 분야의 명예직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 역시 대통령 영부인으로서는 최초의 일이다.

이 여사는 역대 영부인들 중 가장 고령의 나이인 76세에 청와대 안주인이 되었다. 만일 이 여사가 10년만 젊은 나이에 영부인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퍼스트레이디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재임시절 논의됐던 ‘엘리노어 프로젝트’도 좀더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집권 중반기 이후 옷로비사건과 두 아들이 구속되는 사건들이 이어짐으로써 이 여사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활동영역이 많이 축소됐다. 또한 한 개인으로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 되기 전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한국 사회의 여성지도자였다. 이 여사의 삶은 40세 이전에 여성운동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 40대 이후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로서의 내조기, 76세 이후 영부인 재임기, 그리고 퇴임 이후 등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40대 이전의 ‘히히호호’ 시대가 가장 찬란한 시기였을 것 같다. 연극의 극본은 물론, 주인공에다 연출까지 맡아 활동하면서 ‘21세기의 김활란’을 꿈꾸던 그 시기 말이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이 여사의 삶은 40대 이후에 더욱 빛난다. 결혼 이후 겪은 풍상으로 활달한 개성은 사그라들어갔지만 대신 이 여사는 ‘김대중’이라는 남자를 통해 더 큰 관점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 여사에게 김 전 대통령은 남편이기에 앞서 독재에 맞서 조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수호자였고, 이 여사는 그 수호자의 ‘동역자’였다. ‘이희호 없는 김대중은 없다’는 말 자체가 이희호 인생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 여사도 저서 ‘나의 사랑, 나의 조국’에서 “일생을 그에게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국을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DJ의 동교동 자택 문패에는 ‘김대중 이희호’라고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DJ, 이희호 부부가 서로를 평생의 동지이자 반려자로 생각하고 있음을 이 문패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