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시 시장실에서 아시아담당국 부실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업무는 시장 보좌관역으로 시정부와 한인들의 연결 창구였다. 그런데 당시 가장 큰 이슈는 한·흑 갈등이었다. 흑인 커뮤니티에서 장사를 하는 한인들과 흑인들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인 가게에 대한 흑인들의 보이콧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이런 한·흑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분주히 지역사회 인사들과 한인 상인들을 만나고 중재도 했었다.

그런데 당시 흑인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나왔던 불만 중의 하나가 “한인들이 고객인 우리에게 항상 화를 낸 얼굴을 한다”는 것이었다.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서로간의  문화 차이였다. 한인 문화에선 웃으면 괜히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상대방에게도 결례로 비치지만 미국 문화에서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억지로라도’(?) 웃는 모습을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나에게 유감이 있나”라는 오해를 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한인 상인들을 상대로 ‘스마일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 가게마다 스마일 딱지를 붙여놓기도 했다. 뒤늦게 깨달은 상대방 문화에 대한 배려였다. 그때 새삼 실감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것인가’였다. 특히 지역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더욱 ‘소통’은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들은 항상 화만 낸다?

1994년 뉴욕 시청을 그만 두고 이후 13년째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근무해 왔다.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주된 업무도 한국과 미국의 이해증진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양국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느냐를 고민하면서 13년을 일해 왔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예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한국이 그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세계도 많이 변한 만큼 양국 관계도 이에 맞게 변화하는 것은 사실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많고 한쪽에선 서운한 감정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보고 ‘한국 정치권이 소통하는 방식만 제대로 배웠더라면 이렇게까지는 가지 않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마치 과거 한인 가게 주인들이 ‘미소 캠페인’을 하면서 흑인 고객들을 상대로 소통을 했듯이 한국이 미국인들의 정서와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을 했더라면 오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라는 게 내 견해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한국전쟁”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만명의 우리 젊은이가 피를 흘렸던 곳”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따라서 미국을 상대로 ‘자주’라는 의사소통을 하려면 먼저 미국의 입장에서 고민을 한 다음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자주’를 이야기하면 더욱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채 ‘자주’를 이야기하다보니 효과적인 ‘소통’이 잘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같은 소통은 국가간의 소통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국민들과 정부, 시민들과 당, 여러 커뮤니티, 사무실 직원 및 상관, 결혼을 하면 부부, 나아가 자녀들, 시댁 혹은 친정과의 의사소통이 문제가 될 것이다.

김계관 부상의 미소 ‘북한 변화’ 신호탄

 

일주일 전에(3월 초)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실무그룹 회의 참석을 위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뉴욕을 방문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김 부상 일행의 비공식모임을 주선하는 과정에서 직접 김 부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눈길을 끌었던 것은 김 부상이 계속 미소를 띠었다는 점이다.

이곳 미국에서 북한의 이미지는 ‘얼굴 표정이 없는 군인들의 나라’ ‘핵실험을 마구 하는 이상한 국가’라는 게 대체적인 인상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온 고위 외교관이 항상 미소 띤 얼굴로 나타나자 이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좋고 밝은 쪽으로 깊은 인상을 줬고, 부드럽고 차분한 김 부상의 목소리에 미국인들 역시 밝고 부드럽게 긍정적으로 대해줬다. 미국을 아는 일종의 의사소통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사고방식, 그리고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은 실제로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가능한 한 밖에 많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젊은이와 여성들이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밖에 나와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도 결국은 글로벌한 맥락 속에서 한국이 세계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쌍꺼풀 수술한 부자연스러운 무뚝뚝한 얼굴보다는 비록 눈은 가늘지만 미소짓는 얼굴들, 마음껏 웃어 눈이 안 보이는 코리안들을 미국 TV 화면에서 자주 봤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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