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복덩이’ 때론 ‘탐욕꾼’… “두 얼굴 가졌죠”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돼지해이다. 12간지 중 돼지는 12번째. 해시(亥時)는 오후 9~11시이며, 해월(亥月)이란 음력 10월이고, 해방(亥方)은 북서북(北西北)을 뜻한다.

한반도에서 2000년 전부터 사육된 돼지는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다. 돼지는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지내면서 다양한 속설을 낳았다.

돼지는 재물과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 등을 상징한다. 체질이 강하여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고, 식성이 좋아 금방 성장하는 동물이기 때문. 그래서 자손이 번창하는 것을 중시했던 옛 조상들은 먹성 좋은 돼지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여겨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지금도 고사 상에는 돼지머리가 빠지지 않고 돼지의 입에 지폐를 끼워 넣고 절을 하며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 돼지꿈은 길몽이라 하여 돼지꿈을 꾼 다음날이면 복권을 산다.

돼지는 신을 위한 제물로도 많이 쓰였다. 고구려에서 돼지는 ‘교시’(郊豕)라 하여 특별대접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멧돼지를 납향(臘享, 새나 짐승을 잡아 종묘사직에 공물로 바치고 지내는 대제)의 제물로 썼다. 지금도 무당의 큰 굿이나 집안의 고사, 마을 공동체의 행사에선 돼지가 제물로 쓰이고 있다.

돼지는 또한 신통력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 고구려 유리왕은 도망가는 돼지를 뒤쫓다가 나라의 수도를 정했다고 하며 부여에는 돼지가 벼슬이름으로 올라있기도 했다. 또 돼지는 왕이 자식이 없을 때 왕자를 낳을 왕비를 알려주어 대를 잇게 하기도 했다.

이런 성스러운 의미가 있는 반면에 돼지는 동시에 게으름, 더러움, 우둔함, 탐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설화에서 돼지는 탐욕스러운 지하국의 괴물로 등장하며 유대교와 이슬람교 성서에서는 돼지가 악마 혹은 유혹의 상징이다.

우리 속담에도 누군가를 비하할 때 돼지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치 있는 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리 값진 것도 쓸모없다), ‘돼지발톱에 봉숭아물 들인다’(자기의 처지나 분수에 맞지 않게 허영을 부리는 사람),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격에 맞지 않게 치장을 한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일부에서는 “2007년이 60년 혹은 600년 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해이므로 이 해에 태어난 아이는 재물운이 있어 평생을 편하게 살 뿐만 아니라 집안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흘러나왔다. “정해년의 정(丁)자가 오행에서 불을 뜻하기 때문에 내년이 붉은 돼지해며 여기에 음양오행을 더해 계산하면 황금돼지해”라는 것. 그러나 민속학자들은 이 주장이 근거 없다고 지적한다.

육십갑자로 따져 돼지해는 을해(乙亥), 정해(丁亥), 기해(己亥), 신해(辛亥), 계해(癸亥)가 있다. 오행설에 따르면 을(乙)은 푸른색(靑), 정(丁)은 빨간색(赤), 기(己)는 노란색(黃), 신(辛)은 흰색(白), 계(癸)는 검은색(黑)이다. ‘황금돼지해’가 될 수 있는 기해년은 2019년에나 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간속설이 사회 전반에 일파만파 퍼졌던 예는 지난해의 ‘쌍춘년 열풍’이 있다. 쌍춘년은 ‘결혼열풍’을 불러일으켜 결혼 관련업체에 유례없는 ‘결혼특수’를 안겨준 바 있다. 올해의 ‘황금돼지’ 열풍은 ‘출산특수’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돼 영유아 용품 업계,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등이 이를 대비하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돼지가 지닌 ‘다복’의 의미가 기업의 상술에 휘둘리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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