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숲 한가운데서의 새해 구상

지난 일요일 오후 계획에도 없던 공원 산책을 나갔다. 연말연시 묘한 들뜬 분위기를 등지고 호젓하게 숲을 거닐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그동안 꼭 가보고 싶었던 뚝섬의 ‘서울 숲’에 가보기로 했다.

마침 날씨도 포근했고 오후 4시쯤인데 의외로 걷기 운동이나 가족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겨울이라 나무들이 풍성하지 못해 조금은 스산한 분위기, 공원엔 상록수가 많아야겠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한참 거닐던 중 이상하게도 조용한 겨울 숲을 발견했다. 이것도 확실히 ‘숲’(수풀)이라고 해야 할 것이리라. 나무들이 빽빽이 줄 서 있으니까. 단지 잎이 다 떨어진 발가벗은 나무들만 죽죽 높은 키로 가득 서있는 ‘나목(裸木)의 숲’이었다.

공원의 외진 구석 사람들이 뜸한 곳에 이런 숲이 있다니…. 입구에서 한참을 넋 놓고 서 있었다. 바닥엔 누런 낙엽들이 가슴 설레게 푹푹 깔려있는데 그 위로 벌거벗은 은행나무들이 하늘같이 뻗어있는 광경. 푸른 숲만 그려왔던 내 머리를 한 대 내리친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옷 벗은 나무들의 기막힌 아름다움. 바다를 보면 뛰어들고 싶듯이 이 숲에 파묻혀 걷고 싶다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무들 가운데로 난 거의 환상적인 갈색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참 좋았다. 길지 않은 거리여서 다시 돌아서서 걸어도 역시 또 좋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포삭포삭 부드럽게 밟히는 흙길의 감촉을 즐기면서 머릿속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바다를 헤맸다.

2007년엔 무얼 하지? 새로운 사업도 해보고 싶고 새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꼭 실천해야 할 일들도 하나 둘 생각났다. 그러다가 와락 “우리 나이에 무얼 시작해?” 하던 친구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렇지. 남들의 상식과 내 생각의 거리도 가늠해봐야지.

1시간 넘게 이 벌거벗은 나무 숲 속을 오가며 줄기차게 ‘나 자신’을 떠올려보는 독점 공간을 누려본 기분이다. 겨울 공원에 산책 나오기 잘했다 나를 칭찬해주었다.

세종로 한복판 빌딩에 살고 있어서 불쑥 친정나들이 하듯 공원을 찾고 싶어진다. 숨을 쉬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호젓한 숲을 만나 생각지 않은 새해 구상까지 해보니 정말 흐뭇했다. 겨울 은행나무 숲이 나에게 새해 선물을 안겨준 것 같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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