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업인을 만나다 (5) 김현숙 제일농장 대표

“절대로 광부랑 결혼하지도 말고 광산 근처에선 살지도 마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 속으로 매일 남편을 일 보내는 어머니는 딸에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원도 정선, 가난한 광부들이 검게 탄을 뒤집어쓰고 잠드는 밤에 벼락치기로 돈을 번 광산 하청업자들이 탄광 근처의 거대한 요정과 윤락가에서 밤을 밝히는 곳이었다. 광부의 딸로 태어난 김현숙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농사를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고랭지 채소와 한우 농장으로 정선 여성 농업인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끊이지 않은 파동…늘어가는 빚

김현숙씨는 결혼과 함께 농사일을 시작했다. 신혼여행 비용으로 돼지 5마리를 구입한 것이 첫 출발이었다. 처음 하는 농사인데 시행착오가 없을 리 없었다.

의욕적으로 돼지 농장을 시작했는데 돼지 파동이 터지고(79년) 그 해 마늘 파동이 이어졌다. 농협에서 융자를 받아 한우를 구입했더니 83년부터 소 파동이 시작됐다. 송아지 딸린 엄마소를 280만 원에 구입해 3년을 키웠는데 80만 원을 받지 못했다.

이러저러한 실패로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농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안 돼 빚이 9000만 원으로 늘었다. 서울 지역 변두리 전세가가 300만 원이던 시절이었다.

농사로 진 빚은 농사로 갚아야죠

부부는 밤을 지새우며 의논하다 ‘농사로 진 빚이니 농사로 갚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대가 높아 작목에 실패한 고산지대에 고랭지 배추를 심기로 했는데 교통이 나빠 유통할 활로가 없었기 때문에 종사하는 농민도 많지 않았다.

부부는 정선군청을 제 집 드나들 듯 찾아다니며 도로 공사를 요청했고 부부의 간청을 계기로 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부부는 배추 농사에 목숨을 걸듯 달려들었다. 잠을 세 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다. 밤이 되면 경운기와 오토바이의 불을 밝히고 열무를 뽑았다.

10여 년의 실패와 좌절을 보상해주듯 그 해 깨끗하고 싱싱하고 맛이 단 배추가 트럭 200대 분량으로 생산되었다. 배추 수익만으로 2억 원을 벌었다. 대성공이었다. 그 성공을 기점으로 밭을 늘리고 농장을 지었다. 현재 제일농장은 매년 200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

남편과 보폭 맞춘 걸음 내디뎌

그녀는 결혼 직후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농업의 보조자로 떠밀리지 않겠다고 결심해 포클레인 자격증을 따고 농기계 수리에 직접 나섰다. 남편과는 일찍부터 부부 공동명의로 재산을 공유했다. 그 시절만 해도 ‘평등한 부부’ ‘부부 공동재산’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밭을 늘리면서 새 밭의 명의는 제 이름으로 하겠다고 남편에게 요구했죠. 그래도 알고 보면 남편이 얻은 게 더 많아요. 둘이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고 그 이후에 늘린 재산에 대해선 번갈아가며 명의를 등록했는데 알짜배기는 남편이 갖도록 제가 양보도 했거든요.”

한편 그녀는 강원도 여성 최초로 가축 인공수정사 자격증도 땄다. 번식학, 출산학 교육을 받는 130여 명의 교육생 중 여자는 김현숙씨 혼자였다. 처음 인공수정사를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은 수군대기도 했다. 멀쩡한 여자가 여기저기 남의 집 소 궁둥이에 손을 쑥 넣고 무슨 낯 뜨거운 짓이냐고도 했다.

하지만 축산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재산 목록 1호인 소에 관한 일이었고, 앞장서 소 임신 감정을 해 주는 김현숙씨의 노력에 마을 사람들도 감탄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소 아줌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농가에서 소가 새끼를 뱄는지는 가장 중요한 정보거든요. 저도 소를 만지면서 소의 건강 상태나 임신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었지요.”

정선군 군의원으로 활동하는 김현숙씨는 마침 이날 정선군에서 최초로 개설된 농산물판매소 오픈 기념식에 참석해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 정선군 군의원으로 활동하는 김현숙씨는 마침 이날 정선군에서 최초로 개설된 농산물판매소 오픈 기념식에 참석해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농민이 일구는 땅이 곧 무릉도원

지난 5월 지방자치 선거에서 김현숙씨는 지역 주민들의 지지로 정선군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웃의 소를 돌보던 정선의 인공수정사가 전체 지역 살림을 돌보는 정책 조정자로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숲과 물이 맑고 눈이 많은 오지 마을 정선은 최근 카지노로 더 유명해졌다. 카지노가 들어선 덕에 지역 인프라가 구축되고 일부 지역 농토가 값이 오르긴 했지만, 모텔과 전당포, 전당 잡힌 고급 차가 늘어선 불야성의 정선이 농민들의 삶을 개척해 주는 것은 아닐 터. 정선의 땅을 가능성의 땅으로 만드는 건 카지노 산업이 아니라 김현숙씨와 같이 불모지에서 가능성을 만들어낸 농민들의 땀이기 때문이다.

“농사는 예술과도 같아요. 혼신을 다해 자기 작품을 만들 듯 자기만의 세계를 일구는 것이니까요.”

그녀가 땅을 일궜던 동네 이름은 정선군 남면 ‘무릉리’. 그녀와 같은 여성 농민들이 만들어 가려는 새로운 세계가 곧 농업의 무릉도원이리라.

● 프로필

김현숙 대표   60년생/ 정선군 생활개선회장(96~97)/ 강원도 여성발전위원회 위원/ 농림부 농업연수부 외래강사/ 한국농업전문대학 현장교수/ 중국 연변 려명농민대학 객원교수/ 강원도 여성정책 심의위원 /제5대 정선군의회의원 예결위원장

● 후배 여성농업인에게

30년 농사를 지었다는 김현숙 대표는 서른 번 지었을 뿐이라고 표현한다. 한 해 농사는 수확기에 단 한 번 성적표를 받는 활동. 5년 이상 키운 소를 내보내는 축산의 경우 결과는 5년에 한 번뿐이다. 농사는 단순히 밥 짓듯 ‘짓는’ 게 아니라 프로 의식을 갖고 만들어내는 예술 활동 같은 것. 농사는 ‘천지인’의 합작이라 표현할 수 있는데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르듯 최선을 다했을 때 하늘은 격려를 덧붙인 성적표를 건네준단다.

● 김현숙 대표의 성공 4계명

1.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라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게 삶의 태도나 경영방식을 인정받고 있는가? 그들의 평가를 농사의 성공 지표로 삼으라.

2. 한 우물을 파라

떠돌듯 이직이 가능한 업이 아니므로 농사는 어쩔 수 없는 평생직장. 한 우물을 파는 마음으로 승부를 걸라.

3. 실패는 반면교사, 재기는 현장교사

몇 차례의 실패는 농사꾼이라면 누구나 경험한다. 실패와 재기를 반복할 때마다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잊지 말 것.

4. 경운기 시동 걸듯 처음의 고비를 넘어라

경운기를 다뤄보지 않은 사람은 시동 거는 것이 가장 어렵다지만 시동이 걸린 후엔 운전자 마음대로 움직인다. 농사도 처음의 고비를 넘어서야 시동이 걸린다.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